지난 주 어머니 기일이어서 온 식구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재미있는 것이 내 막내 형님이 이미 70세인 고로 모두들 어디가 아파 병원 갔다는 사실 등이 이야기의 중심이었고 모두 퇴직을 한 후여서 그런지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소일거리였다. 그 와중에 모두들 기가 죽은 것은 큰 매형이 지난달에 지리산 종주를 했다는 무용담이었다. 52살인 큰 조카가 다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때 큰 매형의 거만한 모습을 보고 속으로 한참 웃었다. 하기사 은근슬쩍 부아가 뒤틀린 큰 조카가 그 나이에 지리산 종주는 연골 다 깨지는 병신 짓이라고 혼자 나직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이래저래 지체장애인인 나로서는 모든 것이 부러운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 날의 백미는 지하철 시리즈였다.

이제 모두 지하철을 무료로 탄다는 사실이었다. 그 결과 지하철을 타고 가장 효과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중학교 중퇴한 막내 형님 말씀이 1만원 들고 나와서 지하철 타고 온천욕 간다고 한다. 도고온천에 가면 노인이라고 할인가 3000원에 온천욕을 즐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5000원짜리 비빔밥 사 먹고 다시 공짜 지하철 타고 집에 들어가면 1만원 들고 나가 2000원이 남는다고 말씀하시는데 한편으론 이게 바로 우리네 일상이구나 하는 생각과 2000원이 남는다는 사실을 좋아하시는 모습에 울음을 참느라 참 힘이 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요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시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있다. 29만원밖에 없는 이 분에 대해 추징금을 받아내려는 정부 측의 실력 행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데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분의 경호실장이셨던 고 안현태씨와 아는 사이여서 그 분까지 등장하는 것을 TV에서 보며 쓴웃음이 나왔다. 하기사 전 전 대통령도 지하철 승차권이 무료로 주어지는데 초호화판 생활을 하시는 분이셔서 '지하철 무료승차권'이란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도 아예 모를 것 같아 이 분이 좀 더 혹독하게 당했으면 싶다는 생각도 든다.


-NLL 문제?


요즘 갑자기 국가기록원이 국정원보다 더 뜨고 있다. 아니, 나는 국가기록원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는데 NLL 문제로 하도 듣다보니 내 귀에 아주 익숙한 단어가 돼버렸다. 사실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자료가 벌써 공개되는 것이 전혀 맞지 않는 사실이지만 정쟁의 산물로 정국의 주요 이슈가 돼 있는 데 대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반 서민들은 1만원 들고 나가 2000원 남았다고 좋아하는데 그저 정쟁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있다면 무조건 카드로 들고 나오는 정치권을 보면 눈물이 나올 뿐 이다.

제발 NLL 아이템 생각해 낼 시간이 있다면 2000원의 소중함이 뼈에 사무치는 서민들의 눈물이나 씻겨 줄 아이템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전 전 대통령을 지하철에 무료 승차시켜서 온천욕 하고 비빔밥 먹게 한 후 남은 돈 2000원을 추징금으로 내게 하는 것이 더 고소할 것 같다면 이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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