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4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고 오바마 등 8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대학. 유수의 대학평가들에서 해마다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는 세계제일의 명문(名門)대다. 그래서인지 하버드 하면 곧장 '공부벌레'가 떠오르기도 한다. 학생들의 학구열로 밤새 불이 꺼질 줄 모른다는 그 대학 도서관은 그곳의 심장부다. 그래서일까.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공부의 필요성'이나 '근학의 동기'를 일깨워 주려고 흔히 드는 것에, 이른바 '하버드대 도서관의 30훈'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창에 '도서관 30훈'을 쳐보면, 국내 무수한 사이트들에서 '명문(名文)'으로 모셔지는 그것들이 쏟아진다. 아예 그럴싸하게 영어 원문(?)까지 병기해 놓은 곳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눈여겨보면, 하버드의 심장부에 공공연히 내걸려 있을 법한 내용으로 보기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다'·'지금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 된다'·'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학벌이 돈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한 시간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 정말 이런 낯 뜨거운 문구들을, 세계적인 석학들과 인재들이 좌우명으로 삼자고 내걸어 놓고 있을까? 이런 의구심을 필자보다 먼저 가졌던 이도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도서관학자가 마침 그곳에 갈 기회가 있어 정말로 그것이 어디 걸려 있는지 찾아보았더니 비슷한 낙서조차 찾을 수 없더란다. 사서에게 물어 보았다가 도리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말았더란다.

2009년에 나온 '월간 에세이'에 실린 최정태라는 도서관학자의 증언이다. 30가지를 훑다 보면 그럴듯한 구절도 아예 없지는 않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노력의 대가는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가장 위대한 일은 남들이 자고 있을 때 이뤄진다' 하지만 아무래도 수상쩍다. 영어 문장까지 병기된 것을 보면, 다른 나라 사이트들에도 당연히 뜨지 않을까. 웬걸, 그 영어 문장조차 딴 나라 사이트에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만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뭔가. 누군가 제 입맛대로 짓거나 짜깁기하고는 하버드를 판 거 아닌가. 그건 분명 사기다. 그런데, 설사 그렇더라도 의도가 나쁘지는 않으니 '하얀 거짓말'로 칠까. 아니다. 그 문구들에 담긴 경쟁이데올로기의 천박성은 그냥 봐 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것들이 우리 아이들 책상머리에 '모셔지면서' 공부의 이유를 그처럼 얄팍하게 부추길 것을 생각하면, 정말 못내 찜찜하기만 하다.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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