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소방 약재 방화복, 화재 안전대안 부상

겨울철이다. 화재의 위험이 어느때보다 높다.

지난 11월 27일 '불 속의 전사' 한 명이 스러졌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공장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던 고 윤재희(29) 소방교가 철제 빔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1000℃가 넘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허술해진 건물이 자신의 직무에 온 신경을 쏟던 젊은 목숨을 삼킨 것이다. 윤 소방교는 석 달 뒤에 결혼할 약혼녀도 있었다. 그의 죽음 앞에 남은 이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이유다.



◇ 효과적인 소화방법은?

문명이 발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불.

인간이 활동 범위를 추운 지역으로 넓히고 맹수를 쫓을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불 덕택이다.

음식을 조리하고 금속으로 도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불이 인류에게 언제나 행복을 줬던 건 아니다. 화재는 한 순간에 생활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최근 들어 첨단 소방 약재와 소방관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가 선을 보이면서 과학기술이 화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화재가 일어나려면 발화점 이상의 온도, 산소, 땔감이 필요하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불충분하면 불은 꺼진다.

때문에 모든 진화 작업의 주안점은 불의 온도를 떨어뜨리고 산소와 땔감 사이를 분리하는 데 있다.

연소 뒤에 재가 남는 일반 화재는 주로 나무나 종이 등을 땔감으로 삼는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소화 방법은 물을 뿌리는 것이다. 왜일까.

물이 닿으면 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러다 온도가 발화점 이하에 이르면 불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또 물은 땔감과 산소 사이에 끼어들면서 둘 간의 접촉을 막는 구실도 한다. 물이 수증기가 되면서 일종의 차단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물 대신 첨단 소화 약재를 쓰는 국가가 늘고 있다. 소화 능력이 낫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사용하는 인산암모늄 수용액과 계면활성제의 혼합약재가 주인공이다. 이 약재의 가장 큰 특징은 계면활성제, 즉 일종의 비누 성분 때문에 거품이 생긴다는 데 있다. 거품은 불에 닿는 즉시 재빨리 열기를 빼앗는다. 물보다 빨리 불의 온도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게다가 수증기보다 더 두껍게 불을 포위해 땔감과 산소의 접촉을 효과적으로 막는다.

일반 화재와는 달리 유류 화재는 물을 써서는 안 된다. 기름이 물 위에 올라타 화재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발화점 이하로 불의 온도를 낮추는 게 아니라 불을 담요처럼 덮어 산소에서 격리하는 게 소화 작업의 핵심이 된다.



◇ 첨단 과학기술 도입

올해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소화약재의 주성분인 인산나트륨이 바로 일종의 담요다.

인산나트륨은 상온에서는 액체이지만 열을 받으면 기체가 된다. 이 기체가 불 주위를 둘러싸면서 산소 공급을 차단해 불을 끄는 것이다. 최근 해당 연구진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물을 분당 4리터 뿌렸을 때 25초 만에 꺼지던 불이 인산나트륨을 쓰면 17초 만에 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보다 진화 속도가 1.5배나 빠른 것이다.

과학기술이 스며든 소방대책은 약재에만 그치지 않는다. 불과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의 몸에도 속속 첨단 장비들이 도입되고 있다. 최근 국내 한 대학 연구진은 형상기억합금인 '니티놀'로 만든 용수철을 소방복의 외피와 내피 사이에 수직으로 끼워 넣은 시제품을 개발했다.

니티놀은 정해진 온도에 이르면 수축하거나 팽창하도록 미리 '프로그래밍'된 금속. 소방관이 고온에 노출되면 니티놀 용수철이 늘어나 내피와 외피 사이를 벌리고 이 틈에 공기층이 만들어져 단열재 역할을 한다. 외피와 내피 사이에 합성섬유를 넣은 미국제 소방복보다 성능이 낫다는 게 '공기층 소방복'을 내놓은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밖에 자욱한 연기 너머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레이저 투시경, 화재 현장의 온도를 감지해 위험 수위가 되면 경보를 울리는 시스템, 건물 안에 투입된 소방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전자태그(rfid) 장비도 개발 중이다.

이런 첨단 장비들이 보급되면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잃는 소방관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선 소방관 개인에게 부착하는 첨단 장비가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도 있다. 노후 소방차 교체라는 '발등의 불'이 개인 안전장비 보급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소방장비통계집에 따르면 내구연한을 넘긴 '고물 소방차'가 전체의 34%, 2413대였다.

지난해에만 812억 원이 투입돼 906대가 새로 도입되거나 대체됐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개인 장비 보급은 계속 늦춰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달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 해리스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가장 존경하는 직업 1위에 소방관이 꼽혔다. 2

004년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유럽 18개국 시민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기꺼이 사지로 뛰어드는 그들은 이기심이 판치는 현대사회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이 화마에서 그들을 구할 대안이 되길 기대한다.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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