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과 휴일 충북 보은의 한 휴양림을 다녀 왔다. 국립공원 속리산 뒷자락 풍광이 수려한 산과 계곡이 어울러진 곳에 자리잡은 이 휴양림은 등산로는 물론 산책로까지 잘 조성 돼 있어 평소에도 이용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 중 화가 나는 일을 목격했다. 인근 마을이 고향인지라 이곳 사정을 잘 아는 필자가 분노한 것은 다름아닌 어처구니 없는 혈세낭비 사례 때문이었다. 요즘은 휴가철이라서 차량 통행이 빈번하지만 평소엔 한적한 국도에 멀쩡한 가드레일을 뜯어내고 교체하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부식도 파손도 되지않는 가드레일을 교체하는 것일까.

속단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함께 동행한 일행들은 입을 모아 “공사를 발주해야 술밥이나 뇌물이 생기는 것 아니냐.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하는 뻔한 행태”라고 입을 모았다. 요즘 부족한 복지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봉급생활자에게 증세를 하려다 꼬리를 내린 박근혜정부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가 목격했다면 날벼락이 났을 것이라고도 했다.


- 일선 현장 국민세금 줄줄 새


박근혜정부는 5년 임기동한 맞춤형 복지 실행을 위해 모두 135조원의 예산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60%는 정부예산 감축으로, 40%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확보를 계획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이를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맸다.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2013년도 상반기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시기(1월 1일∼2월 24일) 경조사비와 기념품 비용은 5억1208만원이었으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2월 25일∼6월 30일)엔 6323만원으로 떨어졌다. 또 상반기 중 지출한 업무추진비(판공비) 총액(23억여원) 중 60%가 이명박 전 대통령 때(14억여원) 지출됐다. 박 대통령 들어선 9억여원이 쓰였다. 연간 청와대 예산액 63억1561만원 중 36.8%가 상반기에 지출된 셈이다. 재임 기간을 고려해 단순 비교하면 '박근혜 청와대'가 '이명박 청와대'보다 알뜰하게 살림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 국비 절감 공무원 손에 달려 있어


이렇듯 국정운영의 심장인 청와대는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일선 현장에서는 세금이 줄줄새고 있으니 무슨 성과가 있겠는가. 수 억~수 천억 원이 소요되는 국책사업이나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업과 행사비를 비교할 때 청와대 살림비용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결국 큰 돈을 절약하려면 공무원들이 세금을 내 돈처럼 지출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자치단체마다 경쟁하듯 멀쩡한 보도블럭을 교체하거나 타당성·경제성 없는 사업을 마구 추진하고 업자를 위한 설계변경이 횡횡한다면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지하경제 양성화 또한 마찬가지다.

세무 관련 공무원이 의사 변호사 회계사 예식장 숙박업소 부동산중개소 등 고소득 개인사업자에 대한 조세원칙만 지켜지면 가능하다. 하지만 한쪽 눈을 감아주고 반대급부를 제공받으면 이 또한 불가능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은군 내북면 창리를 지나 청원군 미원으로 향하는 국도에서 현지 지형과 교통량을 감안할 때 기존 교각을 확장하면 될 것을 수십억 원을 들여 새 교각을 건설하는 현장을 보고 또 한 번 화가 났다. 도세(盜稅)를 막아야 빈 곳간을 채워 ‘증세 없는 복지’공약을 실현할 수 있을 텐데 걱정스럽다.



/이광형 논설위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