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거치대도 있고 수유실,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있으니 최신 호화 열차라고나 할까? 서울∼춘천 복선전철이 개통됨에 따라 옛날 경춘선은 레일 바이크에게 철로를 내주고, 기차문화도 빠른 면모로 변하고 있음을 이번 여행프로그램으로 실감하고 온 것이다. 찜통더위가 계속돼도 기차여행의 향수에 젖어 위안을 삼는데 행운처럼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개봉돼 신문·방송에서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감독이 1년 넘게 시나리오를 완성해 체코 프라하에서 크랭크인한 대작이라니 관심 받기 충분하다. 대한민국 영화 사상 최고라는 430억 제작비에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니 기대를 품고 영화관을 찾아가본다. 장르가 SF액션스릴러인지라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했는데 서양 배우들의 연기가 처음부터 아주 열정적으로 치밀하게 펼쳐진다. 날센 바위 설산을 배경으로 굴 같이 좁은 기차 안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500m에 달하는 열차 세트 제작이 기본이 됐지만 촬영기술도 대단해 감독과 제작자들의 깊고 높은 안목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설국열차에서 태어나 17살이 된 소녀도 오직 달리는 기차 안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인간에게 깃든 본래적 고통이 진한 아픔으로 스며나온다. 계급적 계층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예상 밖 이야기들이 성인동화처럼 상상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세계 167개국 개봉이 예정된 것으로 봐 어느 정도 인정은 받은 것이고, 한 젊은 예술가의 도전정신과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의지와 귀한 감성이 진정 놀랍고 나아가 자랑스러움까지 깊이 느꼈다. 기차여행으로 시작해 '설국열차'까지 지켜본 올 여름은 열차의 꿈으로 일상의 매너리즘을 떠나 생의 진실을 들여다 본 귀한 계절이었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
달리는 기차는 변화의 상징이며 미래를 꿈꾸게 한다. 좁고 격리된 가족들만의 승용차를 고집할 게 아니라 여러 칸을 오갈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인생과 자연을 관조하는가 보면서 덜컹거리는 열차에 같이 몸을 얹음으로써 인류애·동지애가 전해져오는 기차여행을 한 번이라도 권하고 싶다. 열차는 먼 미지의 세계를 두려움 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며 달리는 친구로 존재하고 있다.
/박종순 회인초 교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