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조상 산소를 찾아 벌초하고, 그동안 신세진 분들께 선물도 준비하고, 직원들에게 줄 조그만 떡값과 집안 어른들께 드릴 용돈도 준비하고…. 때로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이 왜 이렇게 자주 돌아오나 하고 분주함을 넘어 귀찮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나같이 직원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고, 또 평소에 신세진 분들이 많은 경우는 더하다. 뭔가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텐데,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된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젊었을 땐 더했다. 부모님과 장모님을 찾아뵙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가용차가 없던 80년대 초 서울에 살던 시절,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 귀성하기 위해서는 고속버스를 타야만 했고, 특별히 부탁해야 겨우 제 때 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어린 아들이 엉금엉금 차 안을 기어 다녀 붙잡느라 혼나던 일도 있었다. 그 후 거꾸로 청주·대전에 살면서 서울 장모님을 뵈러가기 위해 차례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가는 길이 막혀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국도에서 동네 고샅길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정말 그 때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통스러웠다.

이제는 지난 이야기다. 찾아뵐 부모님도, 장모님도 안 계신다. 가까운 형님 댁에 모여 명절을 보내고, 자녀들이 성장해서 나를 찾아온다. 교통도 좋아지고 휴일도 사흘연휴로 바뀌었다. 모든 것이 편리해졌다. 그러다보니 더욱 편해지고픈 마음도 있다. 연휴를 이용해서 해외여행 등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조상과 부모에 대한 존경의 표시보다 당장 자신의 휴식을 위해 떠나는 것이다. 탓할 일은 아니다. 조상에 대한 숭모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윤기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추석을 맞으며 조상과 부모형제에 대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될 일이다. 원래 추석이 결실과 조상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즐기는 것으로 전해 온 것 아닌가. 이제는 추석명절을 부모와 형제들이 함께 만나는 '가족화합의 날'로 새겼으면 좋겠다. 서양에서도 우리 추석과 비슷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되면, 전국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부모님 계신 고향집에 모여 함께 즐긴다. 물론 그들은 돌아가신 분보다 살아있는 가족의 재회기회로 삼기는 하지만.

벌초도 마찬가지다. 귀찮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친척들이 미리 날을 정해 함께 모여 조상의 산소를 잘 다듬고 성묘하며 화합하는 귀한 전통이다. 부득이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경우라도 추석 때는 반드시 함께 성묘할 일이다. 일전 산책 도중, 어떤 묘지에 깎은 풀을 버리지 않고 묘지 주변에 아무렇게나 방치해 놓은 것을 보았다. 필시 자손이 아닌 이가 무성의하게 깎아놓기만 한 것이었다. 내가 미안해 대충 풀을 바깥으로 치우고 왔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러니 조상 묘를 굴이(掘移)해서 화장하지 않는 한, 추석을 이용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돌봐야 할 일이다.

결론은 이렇다. 비록 오가는 길도 복잡하고, 벌초며 차례준비 등 준비과정이 힘들다 하더라도 가족끼리 도와가며 준비하고, 친인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과 부모형제에게 감사하며 함께 즐기는, 말 그대로 추석 '명절(holiday)'으로 만들자. 여행을 떠나는 등 특별한 스케줄을 갖는 것도 좋지만, 할 수 있으면 가족재회의 기회로 삼아 모이자. 각자 바쁘게 살다보면 부모형제끼리도 만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항차 일 년에 한번 있는 추석에도 자기의 삶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필경 가족 해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다시 맞는 추석. 조상과 부모형제에게 감사하며 함께 모여 가족의 정을 나누며, 멀어졌던 이웃을 다시 돌아보는 아름다운 명절이 되길 소망한다.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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