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면 미루어선 안되는 일이 있다. 조상의 산소를 돌아보고 다듬는 벌초이다.아직 꽤 따가운 볕을 피해 새벽 일찍 시댁 산소에 모인다. 소리가 요란하지만 예초기가 있어 시원시원하게 잡초가 잘려 나간다. 뒤이어 갈퀴로 긁어모은 잡초더미를 치우느라 땀이 비오듯 한다. 풀숲에서 조용히 뛰고 놀던 방아깨비 등 작은 곤충들이 놀라 높이 멀리 비행하고 산소 옆 밤나무에선 알밤이 툭툭 떨어지고......여럿이 힘을 모으니 오전에 마치게되어 다행이다.

아주버님이 모두들 수고했다며 병천에 가서 순대국밥을사주신다고 한다. 오창을 지나 천안쪽으로 향하는 길은 준고속화도로여서 시야가 확 트이고 산천이 따라온다. 후손이 다녀간 산소는 봉분이 하얀 밤톨처럼 드러나 있고 곳곳에 벌초하는 촌로들이 보여진다. 산야의 명당을 골라 매장하는 장묘문화도 많이 바뀌어 새로 쓴 묘소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산림청이 국유림에 국립수목장을 마련했다고 한다. 수목장은 묘지로 인한 국토잠식과 신림훼손을 줄이기 위해 유골을 화장한 후 나무 밑에 묻는 방식이다. 신갈나무, 잣나무,산벚나무 등 추모목 한 그루에 안치유골을 10위까지 모실 수 있으니 효율적이다. 우리 가족도 시부모님 산소를 이전 간소화하는 방안을 협의중인데 참고할 만하다.

병천에 당도하니 음식점이 온통 순대국밥으로 즐비하고 아주버님의 단골집에는 사람들이 문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병천순대는돼지의 창자 중에 가장 가늘고 부드러운 소창을 사용하여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적고 국물맛이 깊고 끝까지 담백한 것이 자랑이다.

식후경에 어디가 좋을까? 병천에 거의 다다를 즈음 우측으로 유관순 열사 생가 표지판을 보아두었던 조카가 그곳을 다녀가자고 한다. 요즘 모 의원이 상식 밖의 방법과 어리석은 생각으로 내란음모를 꾀하고 있어 목숨바쳐 나라를 구한 열사가 더욱 귀하게 다가온 결과이다. 아우내 장터를 뒤로하고 숲길로 들어서니 병천면 용두리 생가마을이 나타난다. 생가는 작고 아담한 초가집으로 바로 옆에 열사가 다니던 매봉교회가 우뚝 자리하고 있다. 생가를 관리하는 열사의 남동생이 기거하던 기와집은 인적이 없이 비어 있다.

동네에 먼 친척 어른을 찾아가 알아보니 열사의 묘소대신초혼묘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폭행과 고문으로 순국하시자 이화학당이 주선하여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유택이 흔적없이 망실되었다는 것이다. 귀한 몸과 얼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현실이다.

대신 부모님 묘소나 찾아 뵙고 참배하자는 의견으로 엄숙해진다. 생가를 돌아 나오다 언덕길에 접어드니 좌측에 애국지사 유중권, 이소제의 묘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놀라운 사실은 1919년 4월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열사와 함께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던 중 부모님이 일본헌병과 수비대가 난사한 기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한 점이다. 그러니까 일가족 3명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이다.

청소년 나라사랑 프로젝트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플래카드를 단 대형버스가 생가를 향하여 들어가고 있다. 부모없는 자녀없고 선조없는 후손없다. 진정한 효와 애국이 무엇인지 이 번 추석에는 자녀들과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볼일이다. 그것이 우리 한국인의 삶에 닥쳐온 힐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박종순 회인초 교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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