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미국의 한 중학교를 방문해 수업을 관찰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수업의 내용은 '유역(流域, watershed)'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었다. 어떠한 개념을 처음 배우거나 가르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교사가 특정 개념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습득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 날 수업은 내 예상과는 약간 달랐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유역의 의미를 직접 정의해보고 발표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학생들은 매우 진지하게 조원들과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고, 서로의 의견을 검토하며 조율했다. 그리고 몇 학생들은 손을 들고 매우 그럴 듯하지만 정답이 아닌 생각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자신있게 발표했다.

하지만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던 것은 교사의 반응이었다. 한 학생이 조원들을 대표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유역의 정의를 발표했다. 누가 들어도 틀린 내용이었다. 교사는 그 내용을 유심히 듣더니 그 중 한 단어인 '땅'을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는 "흔히 유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물만 생각하기 쉬운데 유역은 땅, 즉 특정 범위의 육지를 말하는 거예요. 중요한 부분을 잘 짚어줬어요."라고 격려해줬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분명 오답을 말했지만 교사는 이를 오답으로 넘기지 않고 그 안에서 정확한 개념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준 것이었다. 교사는 그런 식으로 여러 조의 발표에서 내용을 종합해 정확한 의미를 완성시켜갔다. 결국 유역에 대한 정의는 교사로부터 주어지지 않고 학생들의 생각으로부터 만들어졌다. 그리고 정답을 말한 학생만 수업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들로부터 나온 다양한 의견들이 유역의 정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우리 학교의 모습은 어떤가? 교사가 질문했을 때, 이미 선행 학습을 통해 정답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이를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정답을 찾아 대답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이런 문제를 학생들의 토의 실력이나 지식 부족, 자신감의 부재로 봐야 할 것인가? 위 수업에서도 학생들의 생각에서 출발하고 학생들 스스로 이를 발전시켜 정확한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교사였다.

그리고 이러한 수업이 가능했던 것은 이 교사가 많은 지식, 탁월한 수업 전략, 훌륭한 수업 교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교사가 가장 신경썼던 것은 다름과 다양성이 인정받는 안전한 분위기 조성이었다. 학생들의 오답을 인정해주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주고자 했다. 그러한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 오답을 포함한 다양한 생각들이 받아들여지고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고, 그 안에서 우리가 직접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찾아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지영 미국 미시간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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