焚書坑儒 분서갱유

焚 불사를 분; 불사르다, 화형(火刑)하다
書 쓸 서; 쓰다, 기록하다, 문자
坑 구덩이 갱; 구덩이, 구덩이에 묻다
儒 선비 유; 선비, 유학

풀이 -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생매장한다는 말이다. 흔히 서적이나 인사들을 탄압하는 행위나 독재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유래 -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적 제국을 세웠다. 진시황 34년(BC·213)에 신하들과 함께 함양궁에서 잔치를 베풀었을 때 순우월(淳于越)이라는 신하가 봉건제부활을 말했다. 시황제가 이 의견을 다른 신하들에게 묻자 군현제를 입안한 공으로 승상이 된 이사(李斯)가 자신의 이기적인 권력에 대한 아부와 독점을 위해서 시황제에게 많은 내용을 건의했다.
분서에 대한 부분은 이렇다. "사관이 맡고 있는 진나라 기록 이외는 모두 태운다. 직무상 취급하는 것 외에 시서(詩書)나 백가어(百家語)를 가진 사람은 모두 고을 수령에게 바치게 해서 태워 없앤다. 감히 시서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저자에 끌어내다 죽인다. 옛 것을 가지고 지금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그 일족을 다 처형한다.
관리로서 이를 알고도 검거하지 않은 자도 같은 죄로 다스린다. 명령을 내린 후 30일 이내에 태워 없애지 않은 사람은 이마에 먹물을 넣고 징역형에 처한다. 태워 없애지 않는 것은 의약, 복서, 농사에 관한 책들이다."
시황제는 이사의 안을 채택해 실시했다. 이것이 분서(焚書)이다. 다음해 진시황 35년,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연구하는 신선술의 방사들 중에 후생과 노생이 시황제의 부덕함을 욕하고 도망쳐 버렸다. 가까이서 아껴주었던 자들이 황제를 비난하자 학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학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심문했다.
서로 죄를 면하려 책임을 전가하며 자기만 빠져나가려 했다. 그 결과 연루자 460여 명을 잡았고 이들을 함양성 안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이 때 유학자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갱유(坑儒)라고 한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가혹한 법을 만들어 분서와 갱유라는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명을 남긴 것이다. 역사책에 기록되는 이름보다는 사람의 가슴에 남는 따뜻한 이름을 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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