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하는 인사는 통상적으로 가벼운 목례지만 옛날에는 정중례가 상례로 되어 있었고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윗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낯선 이웃마을 어른이 마을을 방문하여도 그냥 쳐다보고 지나치는 날이면 어른들에게 심한 꾸중을 듣기 마련이었다. 윗사람에게는 싫든 좋든 정중히 예의를 지켜야만 부모를 욕 먹이지 않는 것으로 인사를 게을리 하고 어른대접을 소홀히 하는 날이면 어느 집 누구네 몇 째 놈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등으로 죄 없는 부모님이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성장 과정이 공통된 예의범절의 산 교육장으로 윗사람들의 뜻있는 가르침이야 말로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훌륭한 스승의 참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절의 본산이던 농촌에는 언제인가부터 젊은이들이 철새처럼 고향을 등지게 되었고 들녘에는 나이 많은 노인들만이 힘든 농사일을 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인정과 정겨움이 기다리는 시골 들녘에는 하루 빨리 따뜻한 봄이 찾아와 강남 갔던 제비가 오는 그날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와 늙으신 부모님을 보살피면서 효도할 수 있는 어제의 시골 향수가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가 부모님을 섬기고 사회에서 직장에서 윗사람을 공경하는 모든 예(禮)는 하나의 위계질서에 준하는 것으로 우리 속담에도 “냉수를 마시는 것에도 차례가 있다.”고 하였고 “구들 목에도 순서가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정성으로 윗사람을 존중하고 섬긴다는 뜻으로 예(禮)에도 서열과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예의는 진실 된 마음에서 윗사람을 공경하고 항상 존중해야 하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상경하애(上敬下愛)가 되어야 하고 공경하는 윗사람과 아끼고 사랑하는 아랫사람에게도 차례와 순서가 없는 예의는 바른 예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하는 언행이 그 사람의 인격과 지식이 함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말에도 색깔이 있고 모양이 있다는 뜻으로 보통으로 여겨지는 언행에서 예의가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말끝마다 욕지거리가 붙어 다녀야만 말이 되는 습관적인 언어는 자신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타락 시키는 것으로 아무리 좋은 학벌과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없으며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협상테이블에도 앉을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삭막한 현실에서 가벼운 욕설이 오랜 친구 동료 간에 악의 없는 코믹으로 전달될 수 있다면 그것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고 오랜 사이가 아니면 얼마든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몸가짐은 단정해야 하고 언행은 가려야 하며 세상을 골고루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일을 남이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도덕한 소치에서 나오는 것으로 존경과 사랑이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