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시작할 때의 일이니 꽤 오래전 이야기다. 그때는 술 권하는 직장문화여서 "술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며 상사들이 술을 가득 부어주면 무릎을 착 꿇고 정중히 받아서 마시던 시절이었다. 그런 분위기인데다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도 되어 넙죽 받아서 인상을 쓰면서도 다 마시곤 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술 잘 먹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거지? 이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데'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가는 세월과 함께 그 의문이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직원들이 마련한 환영회에서 그 말을 변형해 이런 말을 했다. "그때는 그게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경륜이 쌓여 이 자리에 와서 보니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권하는 술 못 먹는다고 한 잔도 소화 못하는 사람이 조직을 위해서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으며 일할 때나 놀 때나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세월과 함께 터득한 지혜라며 한 잔씩을 돌리면 남녀 모두 못 먹는다는 직원이 없다. 화합을 위장한 부드러운 폭군이고, 어떻게 보면 시집살이 한 사람이 시집살이 시키는 격이지만 빨리 친해지고 소통을 하려는 수법이다. 어떤 모임에서도 큰맘 먹고 술을 권했는데 사이다병을 들기에 "시시하다 야"했더니 그 말이 도발적이었는지 다음번엔 그 제목으로 한번 쓰라고 한다.

그때는 그 제목으로 하나 쓰지 뭐 하면서 건배사를 하나 알려 주었다. 집에 가서 "사랑하는 이 마음을 다 드리리."라는 뜻의 정감이 가는 "사이다"라는 둘만의 건배를 하라고 말이다. 얼마 전 자칭 아마추어들의 창단 연주회를 연거푸 볼 기회가 있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연습을 했는지 부부가 '꽃밭에서'를 색소폰으로 연주할 때는 아름다운 꽃들이 사방에서 막 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을 연주할 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그이와의 멋진 10월의 날들이 무지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이 없다는데 저 정도로 발표까지 하려면 얼마만큼 열정적으로 내공을 쌓았을까 생각하니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라는 저서를 통해 "자기 분야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3시간 연습으로 10년을 노력하여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다. 그 최적의 상태의 첫 번째 조건이 노력과 열정이다."라고 했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도 운은 우둔하고 끈기 있게 노력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고 운· 둔 ·근(運 鈍 根)이라는 휘호를 써주곤 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지나고 보면 10년이란 세월이 순간과 같이 지나갔는데 철이 일찍 나서 하루 세 시간씩 열정적으로 내공을 쌓았더라면 아웃라이어에 버금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때늦은 생각을 하며 아쉬움이 남는다. 하긴 그것을 일찍 알고 뜻을 세웠더라도 괜스레 세파에 휘둘리며 작심삼일로 살아온 날들이니 앞으로 10년을 그렇게 산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특성인 은근과 끈기에 열정을 접목한 그들이 이 가을에 더 아름답게 보인다.



/이영희 단재교육원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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