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말, 교사들의 노조결성을 금지한 법으로 1500여 명의 교사들을 해직시킬 때에도, 그 말은 징계의 불가피성을 뒷받침하는 구실로 내세워졌었다. 그 말은 더욱이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는 권위까지 업고 있었다.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는 데야…! 하여 그 논리는 당시의 교과서에까지 큰 비중으로 실려 있었다. 당시, 중1 도덕 교과서(국정)에는 관련된 일화가 5페이지에 걸쳐 게재돼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아테네 법정에서 부당한 판결을 받고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친구 크리톤이 면회를 와 은밀히 도주를 권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단호히 거절한다. 이유는 재판이 부당할지라도 시민으로서의 법규준수 의무가 더 막중해서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단원 '연구문제'에는 학생들에게 "악법도 법"이라는 말의 의미를 토론하도록 과제까지 달아두었다. 당시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거기서는 철학적 사고가 '실천을 위한 사고'임을 강조하면서 "소크라테스는 비록 악법이라고 해도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기꺼이 독약을 마셨다."고 못 박았다. 그래서일까. 이젠 누구나 "악법도 법"이라는 명제만 접하면 거의 조건반사처럼 소크라테스를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역저(力著) '변명'속에 보이는 소크라테스의 풍모(부당한 법령에 복종할 것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를 떠올리는 학자들조차, 그가 죽음 앞에서 택한 태도였다는 위세에 눌려 이의를 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은 그 말의 출처라는 '크리톤' 그 어디에도 그런 언명은 없다고 한다. 그것이 와전된 것은 1930년대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의 글이 오독된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저서 '법철학'에서 실정법주의를 내세우며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도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라면서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했던 것이, 마치 소크라테스가 직접 한 말처럼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역대 권위주의 정권은 그 말을 억압적인 법집행의 정당화에 악용했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04년 11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들었다는 교과서 내용은 준법사례로 적절치 않다며 수정권고를 하기에 이른다.

그 이후 요즘 교과서들에서는 바로잡혀져 있을까…. 전교조가 합법화 된지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와 함께 '악법도 법'이라는 말도 '조자룡의 헌 칼'처럼 다시 휘둘려지는 모양이다. 시대가 거꾸로 돌려진 걸까. 이제야말로 '악법도 법'이라며 무조건 준수를 강조하는 시대를 넘어, '악법은 악'이니 고치는 것을 서둘러야 할 시대가 아니던가.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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