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뵙게 되는 윗사람에게 부끄럽다고 창피하다고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우물쭈물 넘어가는 예의는 허약한 예의로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마지못해 하는 건성적인 예의로 생각하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예절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다.

우리는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알만한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보편화 된 예(禮)의 표현으로 이처럼 입으로 쉽게 하는 인사가 있고 입과 함께 목, 고개를 숙이는 목례가 있고 허리까지 굽히면서 정중히 하는 정중례가 있다. 이것은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고 때와 장소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일지라도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상태에서 만나게 되었다면 그 자리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반기는 것보다는 일차적으로는 간단한 만남을 표하고 제2의 장소로 옮겨진 뒤에 반가운 재회의 기쁨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때와 장소를 분별할 줄 아는 예(禮)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어떤 방법의 인사일지라도 상대방에게 공경을 표하는 하나의 기초적인 행동을 갖추어 인사를 올리는 것은 꼭 상대방이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하는 인사가 있고 돌아가신 조상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신앙적 예절이 있고 객지 생활을 하는 자식이 먼 곳에 계시는 부모님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낳아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답례의 예절이 있다.

우리는 고유 전통의 예절에서 “절”이라는 인사법을 볼 수 있다. 어릴 적 정월 초하루 새해 아침 윗사람에게 절값이라고 해서 돈을 받는 절하는 짭짤한 재미를 맛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댓가를 바라는 예(禮)를 떠나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참된 예의에 대한 일종의 투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성묘나 시제 때가 되면 선산을 찾아 조상님의 묘소에 큰절을 올리는 것이 최고의 예(禮)를 표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우리의 예절 문화는 언제부터 어떻게 전수되었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정통 “절”에 관한 정리된 자료가 있다면 그것은 지금부터 약 400년 전 예학의 태두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선생이 “가례집람(家禮輯覽)”을 편찬하시어 후세에까지 이는 소중한 “절”에 관한 예법의 자료가 되고 있다.

우리의 인사법에는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약례와 목례 그리고 어려운 자리에서 하게 되는 정중례 등이 있지만 누구나 만나면 쉽게 하는 악수나 포옹 같은 인사법은 순수한 우리 것이 아니고 서구 쪽에서 전래되어 온 남의 것이다.

참된 예의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일깨우고 행할 수 있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의가 진정한 예(禮)라고 할 수 있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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