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단풍행렬로 고속국도가 정체된다. 단풍 명소에 가는 것도 좋고, 걷기 길로 이름난 제주도 올레길, 울릉도 해안길 등도 좋지만, 한겻이면 다녀오는'우암산걷기길'도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럽다.

메모장을 가지고 우암산에 올랐다. 싱그러운 신록을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오색단풍으로 갈아입고 자태를 뽑낸다.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억새꽃숭어리 하늘거리고, 도토리를 먼저 보내고 울연하여 서둘러 내려오는 가랑잎이 머리 위로 앉고,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잉걸불 같다. 사람도 좋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바람직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은행잎과 단풍잎을 주워들고 살펴보다가, 문득 법륜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 되새겨봤다.


-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


사람도 늙을 때 잘 늙어야 한다. 낙엽이 떨어질 때 두 종류가 있는데, 잘 물들어서 예쁜 단풍이 되기도 하고 쭈그러져서 가랑잎이 되기도 한다. 단풍처럼 잘 물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꽃도 예쁘지만, 꽃은 떨어지면 지저분해서 줍는 사람이 없고 빗자루로 쓸어버리지만, 잘 물든 단풍은 은행나무 노란 거나, 단풍나무 빨간 거나 떨어져도 줍고, 때로는 책갈피에 끼워서 오래 간직하기도 하니, 잘 물든 단풍처럼 잘 늙으면 청춘 못지않다는 말씀을 나름대로 정리하며 교훈으로 삼고 싶다.


첫째, 젊었을 때 욕심을 많이 가지고 행동하면 '야망이 있다.'라고 하지만, 나이 들어서 욕심을 내면 '노욕을 부린다.' 고 하니 내려놓고 정리해야 한다.


둘째, 나이 들어서는 절대로 과로하면 안 된다. 젊을 때는 산을 막 오르거나 과로해서 쓰러져도 쉽게 낫지만, 늙어서 과로하면 잘 회복되지 않는다. 마치 가을에 비 한 번 오면 추워지고, 또 한 번 오면 확 추워지듯이 과로하면 그 때마다 팍팍 늙게 된다. 또한 과음, 과식을 하면 여러 가지로 해롭다.


셋째, 어린 아이들은 재잘재잘 말을 많이 하면 귀엽지만, 나이 들어서 말이 많으면 다 싫어한다. 그래서 나이 들면 말을 줄여야 하고, 특히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나이 들면 재산을 다 물려 주어도 자식이 봉양하여 걱정이 없었다. 젊었을 때는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면 되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하지만, 늙어서 오도가도 못 하고 가난해도 추하니, 절대로 재산을 다 물려주면 안 된다. 최소한의 재산과 방 한 칸은 있어야 한다. 유머러스하고 좀 이기적인 것 같지만 타당한 것 같다.


- 웃고 즐기고 나누고 베풀고


우암산 걷기길에서 곱고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너무 감상적(感傷的)인 것 같지만, 누구나 늙게 되고 세월 앞에서는 누구도 큰소리칠 수 없지 않는가! 잘 물들어서 예쁜 단풍이 되기도 하고 쭈그러져서 볼품없는 가랑잎이 되니, 위의 교훈을 곱씹어보며 충실한 삶과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을 웃고 즐기며 최선을 다하고 싶다. 평생 터득한 지혜와 노하우를 자라나는 학생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면서.



/김진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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