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밭엘 갔다. 새밭은 충북 단양과 경북 풍기에 걸쳐 있는 장대한 소백산을 오르는 등산로 중 하나가 있는 동네 이름이다. 단양읍내에서도 자동차로 40여 분을 더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첩첩산중이다. 아마 새들도 소백산을 넘다가 힘들어 이곳에서 쉬어가기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여기서부터 약 3시간을 오르면 비로봉에 설 수 있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개가 있지만 경사도 완만하고 풍광도 볼 만하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 아는 사람들은 이곳을 많이 이용한다.

토요일 오후 드라이브를 하다가 해가 설핏할 때 들렀다. 단풍이 벌써 익고 낙엽도 지고 있었다. 세상과 뚝 떨어진 곳, 계곡의 물줄기가 잡소리들을 잠재우며 힘차게 흐른다. 자주 오지 못하는 현실을 뒤돌아보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물소리가 소음을 잠재우고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기름 냄새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하산객 서너 명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뒤에 오는 일행을 걱정하는 품세가 꽤 관록이 붙은 등산객인가 본데 대화 중에 서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거기서 온 것 같다. 단풍을 보며 기운을 추스렸을 것이고 눈 아래 펼쳐지는 장엄한 산들을 보며 호연지기를 품었을 것이다.

동료와 나누는 눈빛도 참 따뜻했다. 하루종일을 동행하며 정을 나눴을 것이다. 힘들 때 도와주며 전우애 비슷한 감정도 느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행복감이 충만할 것이다. 그렇게 부러움과 흐뭇함을 담아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그들의 대화 중에 수당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지난 주에 회사에서 수당을 주네 안 주네 하며 동료와 다퉜다는 내용이었다.


-소시민의 초라한 객기


찬바람에 은행잎이 한꺼번에 와르르 떨어지는 듯했다. 하루종일 먹었던 신선한 공기와 새롭게 품었던 호기와 나눴던 다정한 얘기들은 다 어디 갔는가. 이 큰 산의 넉넉함이 무색했다. 적어도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 마음과 이 생각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소시민의 객기가 너무 초라했다. 아니 술까지 곁들였으면 더 큰 소리로 수당 그까짓 얘기 무시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도 갑자기 나의 월급과 퇴직금과 연금을 생각했다. 아직 마치지 못한 자식의 학비와 결혼 자금과 직장 잡을 때까지의 부양 금액을 계산해 보았다. 허전했다. 낙엽보다 더 쓸쓸했다. 이곳까지 와서도 걱정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그나 나나 참 작은 사내다. 저 큰 산에 있는 나뭇잎들이 다 만 원짜리 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픽 웃음이 나왔다.



/이진영 매포초 교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