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가도 속 네거티브 시련

"휴...정말 많이 참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18일 청계천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친 뒤 승용차 안에서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그의 대선 레이스가 얼마나 지난한 여정이었는지를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 당선자가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를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 19일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1년6개월간의 대장정은 쉴새 없이 쏟아지는 온갖 네거티브 공세를 온몸으로 헤쳐가야 했던 역경의 순간 순간들이었다.

bbk 연루 의혹, 차명재산 보유 의혹, 모친 일본인설 등 경쟁 후보 측에서 제기하는 의혹들이 끊임없이 터져나와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 험난한 고비도 없지 않았지만 이 당선자는 결승점까지 자신만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이 당선자는 청계천 복원 등의 치적을 남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이미 잠재적 대선 예비주자로 거론됐지만 본격적인 대선 행보는 지난해 6월30일 시장직에서 퇴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종로구 견지동에 `안국포럼'이란 이름으로 대선캠프를 가동하고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 의원과 김백준 전 서울메트로 감사, 조해진 공보특보 등 `서울시팀'으로 불리는 측근들을 포진시켰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이 당선자의 여론 지지율은 평균 15% 안팎으로 고 건 전 총리,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3위에 머무르던 상태.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고 `그랜드 대권플랜'에 따라 촘촘한 행보를 이어갔다.

당시 박 전 대표에게 쏠림현상이 나타나던 `당심'을 잡기 위해 의원 및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물밑 접촉을 강화했고 전국 민생탐방과 강연, 해외순방까지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린 끝에 수도권 민심이 지방에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추석 연휴를 거치고 10월말 북핵 사태로 위기 의식이 고조되면서 40%대로 급상승, 고 전 총리를 제치고 선두로 치고 나갔다.

이 때부터 이 당선자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는 독주 체제를 구축한다. 특히 지지율 2위로 내려앉은 고 전 총리가 지난 1월 중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지지율은 50~60%대를 오르내리는 `고공 비행'을 거듭했다.

`호사다마'란 말이 있듯 이 후보에게 본격적인 시련이 닥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이명박 대세론'이 힘을 얻어가자 곳곳에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 당시엔 범여권보다 당내 경쟁 주자였던 박 전 대표 진영의 공세가 더 날카로웠다.

특히 2월 들어 박 전 대표 경선캠프의 정인봉 법률특보가 이 당선자의 도덕성 의혹을 담은 `이명박 x파일'을 공개하겠다며 군불을 지폈고, 이 당선자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씨가 이 당선자의 `위증교사 및 살해협박' 의혹 등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박 전 대표 측의 유승민, 이혜훈 의원 등은 이 당선자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경제적으로 도움은 되지 않고 환경만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본격적인 `이명박 때리기'에 나섰다. 이 시기 이 당선자의 지지율도 다소 조정을 받아 40%대 중.후반의 박스권에 갇히게 된다.

그러자 박 전 대표 측은 경선전이 본격화된 6월부터 8월까지 경선후보 정책토론회와 사상 초유의 당내 후보 검증청문회, 합동연설회를 거치면서 이 당선자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설을 집중 제기하고 나섰다. 범여권에서 이 후보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다"고 했던 `회심의 카드'도 bbk 문제였다.

이 당선자 본인과 친.인척의 대규모 부동산 투기 의혹도 제기됐고, 차명재산 보유설은 `도곡동땅 차명보유 의혹'으로 더욱 구체화됐다. 검찰도 8월 중순 도곡동땅에 대해 "이 후보의 큰 형인 이상은씨의 지분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애매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해 의혹을 더했다.

이 당선자의 경선 캠프에선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보고서' 작성, 국가정보원의 `이명박 tf' 운영 및 정치 사찰 등을 주장하고 박 전 대표측 `저격수'들에 대해선 법적 대응을 하는 등 대반격에 나섰지만 지지율은 조금씩 하락했다.

돌아보면 이 기간이 이 당선자의 대선 레이스에서 최대 고비였던 셈이다. 지지율은 30%대 후반으로 떨어졌고 한때 20~30% 포인트를 유지하던 이 당선자와 박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는 경선전 막판 10% 포인트 안팎으로 좁혀졌다.

다만 8월초 검찰이 유전자(dna) 검사를 통해 `이 당선자가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복형제'라는 의혹 제기가 거짓임을 밝히고, 병역 기피 의혹도 해소해준 점은 "부끄러운 일은 하지않았다"는 그의 거듭된 해명에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줬다.

결국 이 당선자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난적' 박 전 대표에게 신승을 거두고 8월20일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확정되지만 여전히 말끔하게 풀리지 않은 의혹들 속에서 험난한 여정은 계속됐다.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는 주요 상임위에서 이 당선자에 대한 범여권의 도덕성 의혹 제기가 잇따르면서 `이명박 국감'으로 변질됐다. `대운하 논란'이 재점화됐고 정무위와 재경위에선 bbk가 이 후보 소유라는 신당 의원들의 주장이 잇따랐다. 복지위에선 이 당선자의 탈세 및 국민연금,건강보험료 탈루 의혹도 제기됐고 bbk 의혹을 풀 열쇠인 김경준씨의 귀국설도 함께 돌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후보 확정 이후 50%대로 반등했던 지지율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이후 11월7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선언에 이어 같은 달 16일 김경준씨의 전격 귀국 파장으로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30%대 후반까지 떨어지는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그러나 김씨를 상대로 한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는 이 당선자의 대세론을 굳히는 계기가 된다. 검찰은 bbk와 관련해 이 당선자에게 제기됐던 모든 의혹들에 대해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다시 40%대 중반으로 반등했고 이 당선자의 낙마 가능성을 제기하며 `보수진영 대안후보론'을 내세웠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소나기 같은 네거티브 세례 속에서도 대세론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이 당선자는 결국 17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이후에도 그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대선일을 이틀 앞둔 17일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잘못은 밝혀질 것"이라며 국회에서 `bbk 특검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에 따라 당선자 신분으로 특검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어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