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상당수 수험생들은 아직도 지원 대학과 학과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눈치 작전이 어느해 보다 극심하다. 수능 성적이 점수가 아닌 9개 등급으로만 표시됐기 때문이다. 수리 가형의 경우 난이도 조정 실패로 한 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떨어졌고 총점은 높지만 평균 등급이 낮게 나온 사례도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예년처럼 원점수와 백분위, 표준점수로 수능 성적을 표시할 경우 1∼2점 차, 심지어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서열이 매겨지므로 점수 경쟁이 불가피했다. 교육부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등급제를 도입했다. 점수보다는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선발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그런데 막상 채점하고 보니까 1등급 구분점수가 사실상 100점 만점인 영역이 나오는 등 폐단이 발생했다. 한 입시전문교육업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 수험생의 86%가 수능 등급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정부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대학들은 마지못해 내신 실질 반영률을 높였으나 변별력을 이유로 내신 등급 간 점수를 크게 좁히는 방법으로 내신을 무력화했다. 반면 수능 등급 간 점수 차는 크게 벌려 수능 등급제 혼란을 부추겼고 일부 대학은 논술 변별력을 높인다며 점수를 더욱 세분화했다. 수능 등급제에 따른 혼란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됐던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막상 이사회를 열고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수능 등급제를 한 차례만 시행해 보고 폐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의 혼란이 일과성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비춰 보면 너무 안이한 진단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충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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