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에서 산닭을 잡아 파는 사람들을 만났다. 장사가 잘 안될 것 같은데 그들은 아직 산닭을 사러 오는 어르신도 많고 제상에 올릴 닭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비닐봉투 안에 방금 잡은 닭의 몸통에 닭발과 대가리까지 담겨 있다. 닭발과 대가리를 보자니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장면이 어른거린다. 어쩌다 한 번 닭 잡는 날이면 몸통은 가족들의 차지였다. 그리나 닭발과 대가리는 늘 어머니의 몫으로 맛있다며 알뜰하게 살을 발라드시곤 했다.

어머니 생애에 잘 먹는다는 것은 가장 소중한 가치 중의 하나였다. 먹을 것이 귀하던 가난한 때에 전쟁까지 겪으시며 당신은 비록 헐벗더라도 자식에게 만큼은 배불리 먹이겠다는 것이 신념이셨다. 형님께서 군에 가셨을 때는 따뜻한 밥 먹기를 외면하시며 형님의 고생을 몸으로 기억하고자 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걱정과 달리 우리는 원래 마른 체형이었는데, 그것이 마치 당신이 제대로 거두지 못한 탓이라 여기며 죄책감으로 사셨다. 그래서 어머니의 생은 자식들이 못 먹고 배고프게 다닐까 하여 늘 걱정을 달고 다니셨다.

놀다가 와도, 학교 갔다 와도 "배 고프제? 밥 줄까?"하고 물어보셨다. 밥도 먹었고 배도 부르다 하면 "고구마 줄까?", "식혜 줄까?" 하며 먹을 만한 것을 일단 들이 밀고 보았다. 먹는 것이 식상해서 이도 저도 싫다하면 "먹다 남은 막걸리 있는데 줄까?", "며칠 전에 사과주 담갔는데 한 잔 줄까?" 하시며 술까지 권하셨다. 시도 때도 없이 먹으라는 성화에 골을 부렸지만 어머니의 습관화된 자식 먹이기 사랑은 절대 후퇴하는 법이 없었다. 숟가락에 밥을 가득 떠서 꾸역꾸역 먹는 모습이 그렇게 좋다며 행복해 하셨다.

틈만 나면 뒷집에 사는 네 친구가 밥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 하시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뒷동네 L면장님의 풍채가 부럽다며 너도 얼른 많이 먹고 얼굴 부옇게 해서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쌀밥과 고기가 넘치는 세상이 되어도 정작 어머니가 드시는 음식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허드레 음식만 드셨다. 그러다 노년에 병환까지 겹쳐 차가운 겨울에 뼈만 앙상한 모습으로 임종 하셨다. 온갖 산해진미가 넘치는 세상을 살고 있다.

TV를 켜면 채널마다 맛좋은 집이라 방송하고,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에 열광을 한다. 리모콘 하나로, 전화기 하나로 버튼만 누르면 먹을 것을 집까지 배달해 주니 멀리 있는 바다와 들판이 문전옥답이 된 세상이다. 어머니가 가신 후 기름진 음식이 넘치는 세상을 살며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만큼 배가 부르게 살고 있다. 살아 있는 아들은 배가 남산만큼 커지고 얼굴도 부옇게 해서 다니는데, 뼈만 앙상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따라다닌다. 오늘도 차고 넘치도록 사치스런 밥상을 마주하니 "배 고프제? 밥 줄까?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방역팀장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