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은 서설(瑞雪)처럼 상서로운 때이다. 2014년, 갑오년 해가 새롭게 떠올랐다. 새해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희망과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묵은해를 보내면서 못내 아쉬운 생각들이 뜰 앞에 쌓인 낙엽만큼이나 겹겹이 쌓인다.

바라건대 새해에는 매사에 활력과 생동감이 넘쳐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청마처럼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정초는 휴식과 명상의 시간이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상념에 젖는다. 시나브로 어릴 적 시골에서 들었던 시냇물 소리가 휴식 공간 전체를 울린다. 종일 들어도 피곤하지 않다. 책을 읽는데도 방해되지 않는다. 삶의 일상에서 정신없이 살아온 지난 한해가 물소리와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뇌를 식혀주는 물소리가 아닌가. 아니, 자연의 주옥인지도 모른다. 신년초여서인가. 점심 약속마다 메뉴가 일주일에 반은 떡국이다. 하지만 그게 그다지 싫지가 않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하고 편한 게 좋은 나이인지도 모른다. 시장 주변 식당엘 갔다. 칠순이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품새로 보아 시골에서 장거리를 만들어 새벽차를 타고 왔나 보다. 유정란 달걀이며, 토마토, 감자 같은 건강한 먹거리를 한 보따리 풀어놓고, 가래떡을 직접 어슷어슷 썰어가며 떡국을 만들어 주었다. 그 맛이 가히 천하일품이었다.

어떤 비싼 음식보다도 맛깔스럽고 푸짐했다. 할머니와 함께 새벽을 달려온 싱싱하고 건강한 재료 탓이리라. 맛나다는 칭찬에도 "아녀,아녀" 손사례를 쳤다. 그리곤 떡국을 더 얹어주는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이 저녁노을만큼이나 겸손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나름대로 맛집에 대한 정의를 세워놓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값이 싸면서도 맛있어야 진짜 맛있는 집이다. 값이 비싸면서 맛이 있으면 당연하다. 값은 비싼데 맛이 없으면, 내가 돈을 내는 것이 아니어도 왠지 속은 느낌이다.

그런 집은 필경 맛있는 집이 아니다. 먹을 때는 그런 대로 맛 있었는데, 내 주머니 돈으로 밥값을 치르고 나서 뒷맛이 쓰다면 맛있는 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맛집을 소개하는 글을 읽을 때도 매한가지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음식 맛을 칭찬해 놓았어도 음식 값을 적어놓지 않으면 믿음이 덜하다. 이렇게 맛과 값의 상관관계가 크지만, 맛집 순례기로 명성을 쌓은 사람도 음식 값 정보 제공에는 소홀한 경우가 더러 있다. 혹시나 맛은 있지만 서너 가지 음식을 별도 주문해야 하는 영업 전략을 쓴다면, 밥값이 호된 만큼 먹는 이가 얼굴을 찌푸릴 일이다. 이런 식당을 맛집 반열에 올릴 수 있을까.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평소 차나 밥을 먹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맛집은 예사로운 일을 통해 일상의 삶 속에서 풍성하고 겸손한 우리네 인정을 담아 실천하는 진정한 정신적 다반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그런 맛집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김정열 수필갇충북도청 식품의약품안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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