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 시즌이다. 곧 있을 지방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예비후보자들은 벌써 얼굴과 이름 알리기에 한창이다. 각자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해줄 사진과 문구가 들어 있는 명함들을 들고 다니며 각종 모임에 조심스럽게 나타나 악수 하러 다니기 바쁘다. 이때 이들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겸손하다.

바로 직전까지 높은 직급·지위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마다 드는 의문은 저렇게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소통을 외치는 후보자들이 왜 당선 되고 나면 권위적으로 바뀌며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가였다. 이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열이면 아홉 초심을 잃어서라고 대답한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단순히 후보자로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당선이 되고나면 보일 수 있다. 사랑이 전부라고 믿던 이상주의자 연인들이 결혼 후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사랑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면 비약이려나. 필자는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사회에 살면서 어릴 때부터 성공을 지나치게 강요받는다.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한 성공은 미덕이요, 실패는 죄악인 것이다. 사회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집단은 대부분 이와 같은 냉엄한 경쟁체제에서 승리를 거둬온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은 그들이 성공을 위해 흘려온 땀만큼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무엇이 '되는' 것 자체에만 집중한 나머지 '어떤' 무엇이 되는가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필자가 법조인이 된 후 법조인들이 사회에서 받는 불신과 그러한 불신을 더욱 가중시키는 각종 법조인의 사건사고를 보면서 그 이유를 고민하게 됐다. 사법시험 합격하는 것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산 나머지 어떤 법조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법조인들을 많이 보면서 '어떤 법조인이 되어야 겠다'라는 의지와, 그런 법조인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것이 그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필자가 세운 목표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의뢰인(당사자)에게 이익이 되는 법조인이 되자는 것이었다. 의뢰인을 위한다고 사회에 해악을 끼쳐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바른 생각, 둘째 해박하고 정확한 법률지식, 마지막으로 친절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무리 법률지식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사회에 해악을 끼칠 것이고, 생각이 바르더라도 법률지식이 부족하면 의뢰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면 어떤 법조인이 존경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비단 법조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거에 당선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당선된 후에 어떤 정치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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