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이다. 점심식사 후 산책 삼아 무심천 뚝방길을 나서니 비온 뒤라서인지 수양버들과 온갖 초목들이 환한 연두색 빛을 내고 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상큼하고 햇살에 부서지는 시냇물 여울이 눈 부시다. 봄의 감흥에 젖을 즈음 우렁찬 폭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우리 영공을 지키는 공군 전투기 편대가 발진하고 있다. 흰 구름 속으로 멀어져 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필자의 일기장에 보관중인 스크랩 된 신문을 생각하며, 몇 년 전 여러 번 게재됐던 어느 공군 전투조종사의 일기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지난 2010년 3월 2일, 후배 조종사의 비행훈련을 돕기 위해 F-5F 전투기에 동승했다가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故) 오충현 공군대령의 이야기다.


- 숭고한 군인의 길


그가 지난 1992년 12월 동료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18년 후에 있을 자신의 유언처럼 쓴 일기의 일부분이 언론에 소개된 내용이다.


"내가 죽으면 가족은 내 죽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담담하고 절제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장례는 부대장(葬)으로 치르되, 요구 사항과 절차는 간소하게 했으면 한다. 또 장례 후 부대장과 소속 대대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돈 문제와 조종사의 죽음을 결부시킴으로써 대의를 그르치는 일은 일절 없어야 한다.군인은 오로지 '충성'만 생각해야 한다. 비록 세상이 변하고 타락한다 해도 군인은 조국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전투조종사의 운명이다"


그의 일기를 읽으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군에서 군 생활을 한 예비역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또한 나는 무엇으로 사는지,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때 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젖어온다.


- 잊지 말아야 할 3월의 아픈 기억들


이기주의와 보신주의가 판치고 권리와 의무가 도리와 배려를 밀어내는 혼탁한 세상에 참 군인정신을 우리 가슴에 각인시키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난 그의 순수한 조국애와 숭고한 희생에 깊은 애도와 경의를 드린다.


또한, 어제 26일은 1910년, 31세 청년 안중근 의사가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처단한 후 뤼순감옥에서 순국(殉國)한 날이란다. 그로부터 100년 뒤인 2010년 3월 26일, 서해를 지키던 '천안함'이 백령도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적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꽃다운 우리의 아들 46명이 전사한 날이기도 하다.


다시 또, 3월을 보내며 이 날의 의미와 정신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양충석 설비건설협회 충북도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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