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에 '나쁜 사람'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거기에는 죄를 지은 나쁜 사람과 그를 심문하는 형사가 등장하는데, 그가 어찌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말할 때 듣는 사람은 마음이 울컥하게 된다. 이 나쁜 사람은 실제로 알고 보면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이기에 그렇다. 결국 이 나쁜 사람을 취조하던 형사는 법의 잣대로만 처리하려했던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며 이 코너를 끝낸다. 이 개그 코너는'진짜' 나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여운과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가히 나쁜 사람 전성시대를 사는 듯 하다.뉴스나 칼럼에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희생이나 선행보다는 돈과 권력, 지위와 처세에 관련돼 정확하게 재단된 이야기들이 더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 까칠하고 차가운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차 메말라 간다. 잔잔하게 우리의 마음을 적시던 훈훈한 이야기와 마음 씀씀이가 점차 사라져 간다.


선한 것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기준을 준다. 악은 악인에게서 선은 선인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사람들은 거부하겠지만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하고, 착한 사람이 착한 일을 한다. 아니, 해야 합니다. 착한 것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 번째 기준은 사람이다. '착하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보면 '사람의 하는 짓이나 마음가짐이 바르고 어질다'라고 나온다.

이 말대로 보면 이 시대의 기준인 '차도녀'나 '까도남'은 바른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어진 사람은 아니기에 착한 사람이 아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질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기준은 하나님이다. 성경이 말하는 착함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말한다. 내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착한 것이다. 사람의 기준은 바뀐다. 상황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때로는 장소에 따라서 사람들이 착하게 보는 기준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그렇지 않다. 절대자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그분의 기준은 한결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똑같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왕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을 죽일 기회를 잡았다. 자신의 부하들과 다른 사람들은 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착한 사람은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다윗은 그리 하지 않았다. 이는 당장 손해인 것 같지만 결국 모두 얻는 사람이 됐다.


꽃이 피는 봄이 됐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겨울인 듯하다. 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봄을 불러올 착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여러분은 착한 사람이십니까? 착한 사람에게서는 착한 일이 나온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시대가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쁜 사람'이 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어진 착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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