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뜰 앞에는 산수유가 한그루 있다. 하루하루 꽃눈이 벙글어 가는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노라면 알싸한 봄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금새 벙글 하다가 어느 날은 잔뜩 움츠러들며 파르르 기온을 타더니 어느 순간 화들짝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내는 게 아닌가. 누군가가 산수유 꽃을 노란 그리움이라 했다. 그리움 노랗게 쏟아낸 산수유, 그녀는 무엇이 그리 보고 싶어 헤살 떠는 꽃샘바람 다 견디며 온 몸이 노랗도록 애 닳게 피어났을까. 그렇게 서둘러 길을 내며 꿈꿔 온 봄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자고로 의식의 선각자치고 어려움 겪지 않은 이가 없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남보다 앞서서 열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가 따른다.

역사를 들추지 않고 뜨락만 내다봐도 그 이치를 알 것 같다. 자연이나 사람살이나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 사연을 안고 6·4 지방선거의 불꽃이 오르고 있다. 이번 선거가 제대로 지방자치시대를 열 것인가, 아니면 말로만 떠들다 그냥 주저앉을 것인가 중대 기로에 놓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치는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에도 그간 정치인들의 행위에 휘둘려 온 게 사실이다.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기초단체의 장이나 의원들이 어느 한 정당에 속해서는 안된다고 소리 높여 왔고, 정치인들 역시 주민들과 한 목소리를 냈다. 지역주민들의 숙원이던 기초단체 정당폐지는 그저 단순히 약속한 것이 아니다.

지방정치에선 정당이 실제 지역발전에 많은 부분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에 수없이 논란을 거듭하며 검토 해왔다. 그 결과 지난 대선 때 각 당이 모두 선거공약으로 내걸게 됐던 것이다. 대선은 끝났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당공천폐지공약은 동상이몽이 됐다. '공약(公約)과 공약(空約)' 둘 중 어디를 염두에 뒀는지 그 속맘이야 알 수 없지만, 또 한 번 휘둘리는 느낌이 든다. 공천을 강행하는 여당 쪽은 상향식이든 하향식이든 정당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기호 1번을 받게 된다. 공천을 안하는 쪽은 무공천으로 끝나는 것 뿐 아니라 탈당을 해야 한다.

탈당을 하면 무소속이다. 기호 2번이었던 1야당의원들은 다른 군소정당보다도 번호가 맨 뒤쪽으로 밀리게 된다. 선거에서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번호와 옷의 색을 활용하던 풍토에서 기초단체의 2번 없는 거대여당은 대박이고, 나머지 군소정당들은 어부지리가 될 형국이다. 정당 없는 지방자치를 정착시키느냐, 계속 정당을 존속시키느냐 여부는 온전히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공약(公約)을 중시하느냐, 공약(空約)이 만연하느냐 역시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치인을 부릴 수 있는 힘은 진정한 사람을 가려 뽑는 유권자의 판단에서 비롯된다. 모진 바람 헤치고 꽃길을 연 산수유, 그가 꿈꾸는 봄은 크고 작은 꽃들이 제 분수에 맞춰 다투지 않고 절로 피어나 어우러지는 세상 아닐까. 서로 배경이 됨으로써 아름다운 그런 봄날, 특별하지 않는 그런 일상일지도 모른다.



/김윤희 진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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