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허물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누구의 허물을 말할 수가 있겠는가? 자신의 욕심이 이 보다 클 수가 없는 것을 누구의 욕심을 말할 수가 있겠는가? 또, 자신의 가슴에다 늘어놓은 거짓을 어찌하고 누구의 거짓을 말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자신은 불완전한 인간이면서도 타인들에게는 완벽한 인물이 되기를 강요한다. 마치, 타인의 허물을 싫어하고 욕심을 싫어하며 타인의 거짓은 싫어하면서 자신의 허물은 덮어두고 자신의 욕심은 적당하며 자신의 거짓을 정당화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큰 거짓이고 자신의 큰 허물이며 자신의 큰 욕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남에게 거짓의 헛됨을 이야기하기는 쉽겠지만 자신에게 거짓의 헛됨을 말하기가 어렵고 남에게 욕심의 허상을 이야기하기는 쉽겠지만 자신에게 욕심의 헛됨을 말하기는 어렵다. 또, 자신의 과거에서 행하였던 허물들은 하나의 추억이고 소소한 인간사의 일로 생각을 하면서도 남의 허물은 죄업이며 인간사에서 행(行)할 수가 없는 절대 절명의 허물처럼 말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 오류(誤謬)에서 착각하기가 쉽고 이 오류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 오류로 인하여 소중한 추억에다가 상처를 입히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입장과 마음을 타인의 입장과 마음에서 바꾸어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이러할 때에 아픔이 있었다면 타인도 이러할 때에 아프게 되고 나의 마음이 이러할 때에 기쁨이 있었다면 타인도 이러할 때에 기쁨이 되며 나의 마음이 이러할 때에 즐거움이 생겼다면 타인도 이러할 때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허물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고 남의 욕심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며 남의 거짓을 함부로 단정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타인(他人)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自身)의 미래(未來)를 위하고 자신의 허물을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허물과 욕심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버려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내가 버릴 때에 내 안에 있던 거짓이 달아나는 것이지 누군가가 버리라고 한다고 욕심이 도망을 갈 리가 없고 고치라고 한다고 허물이 고쳐질 리도 없으며 질타를 한다고 하여서 거짓이 없어질 리가 없다.

다만 내가 나의 허물을 날마다 줄이고 욕심을 날마다 줄이며 거짓을 날마다 없게 할 때에 어려움으로 고통 받던 자신의 마음이 구원을 받고 부족(不足)함에서 번뇌하던 자신의 마음이 족(足)함의 기쁨으로 채우게 된다. 이때의 마음은 평화롭고 생각은 자유로우며 욕심은 마음과 생각이 편안하게 머물 수가 있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대저 나에게 독(毒)이 셋이 있으니 그 하나가 욕심이요, 둘이 성냄이요, 셋이 어리석음이다.

해서 항상 적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성냄을 줄이고 진리를 깨달아 어리석지 않다면 어찌 나에게 독(毒)이 있다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천당이고 극락인 것을!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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