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어른돼 아빠하면 알지…'/아직,팔남매는 모릅니다. /먼동 트기 무섭게 /어머니,두 누나를 참빗질할 때 /외양간 쇠털 고르시던 아버지 /어미소 새끼 날 달차츰 채워가면 /콩 한줌 더 떠 붓고 /보약처럼 닳이시던 아버지. /이제야 출렁거리는 그림 어렴풋하지만 /물감풀어 아무리 그리려 해도 /평생 과제로 헤맬 뿐입니다./

필자의 동시 '가슴으로 키우는 사랑'전문이다. 내가 열 살 되던 해 여름방학, 엄마가 챙겨주신 고구마 보따리를 들고꽤 너른 폭의 냇물 건너 훈장님을 찾아 '동몽선습'을 익힌 추억은 지금 생각해 보면 원조 과외였다.이름 석자를 물으신 훈장님은 다짜고짜 뜨락 뒤편으로 데려가시더니 손바닥 여기저기에 물집이 앉도록 장작을 패게 하셨다.

포기할까 몇 번을 망설였으나 견뎌낸 덕으로 다음 날부터정식 학동(學童) 명단에 오르는 행운이 주어졌다. 대학을 입학하던 지난 1968년만 해도 크고 작은 돌멩이가 깔린 청주 시내를 달린 자동차 먼지는 그대로 뽀얗게 교복에 달라 붙었다. 강의실 바닥은 삐그덕 소리로 층간소음이 유달랐으나 참으로 정감있는 역사였다.

격세지감이랄까? 강의 중, 교수님의 줄담배도 오히려 멋스러움으로 묻어났다. 요즘 같으면 아마동영상으로 앞다퉈 쏘았으리라. 동심을 캐는 교육, 그 살아있음의 현장도 속절없는 세월만큼이나 변하고 있다. 초등학교 등굣길 아이들은대부분 교장선생님이나 학교 지킴이, 녹색어머니 회원들과 기분좋은 만남으로 시작된다.

아침인사를 나누는 교문 앞 정겨운 모습은 자연스런 일상이다. 그 오래 전, 발짝 소리를 낮춰 주문(呪文)처럼 '훈장님 고맙습니다'를 되뇌이시던 말씀으로 팔남매 중 일곱째에게 초등교사의 길로 진로를 터주신 어머니. 올 어버이 날도 산소에서나 뵌 텅빈 마음은 불효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향해주기를 바란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기울이면 관계가 좋아지고 막히면 어느 부분이 터지거나 큰 고장을 부른다. 학교의 발전은 일부 교직원, 학부모나 학생들의 독자적인 노력이나 행보만으로 어렵다. 어떤 일이건 중용을 잃으면 곧 지탄의 대상이 되고 소리없는 불화살을 맞지만, 교육을 통해 태성(胎性)까지 바꾼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사제 간 불신은 기대수준을 낮게 한다. 선생님이야 말로 가르치는 것 외에 정신을 올곧게 심어주는 지기다.

다른 직종과 달라 강한 윤리와 도덕성을 요구 받는다.교육을 가리켜 '심적 울림을 겨냥한 한 편의 시(詩)와 같다'고 했다.'天地之間 萬物之衆 惟人 最貴(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귀중하니…' 천자문(千字文)을 뗀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과정은 인간존중과 생명사랑 중심이었다.

'내림굿' 같은 스승의 다부진 앙증으로 굳히려 해도 아직 먼 느낌인 건, '스승의 날'이란 매서운 회초리 때문일까?

▲ 오병익 前 단재교육연수원장 © 편집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