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의 끈을 잘 잡으면 그 끈의 끝에서 피는 꽃을 보는 것이요, 하나의 끈을 잘못 잡으면 그 끈의 끝에서 만나는 벽을 보는 것이다.

가다가 마는 끈이 있고 끝까지 가는 끈도 있다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하나의 끈을 잡으려고 동서남북으로 분주히 움직일지라도 그 근본(根本)을 외면하고 혼자서 복잡하고 혼자서 바쁘기만 하다.

무릇 선연(善緣)의 끈을 가까이 하고 악연(惡緣)의 끈을 멀리하며 정당(正堂)한 것을 가까이 하면 된다.

이때에 자신은 선(善)한 마음을 지니고 정당한 길을 걷게 되면 저절로 선한 끈과 만나게 되고, 그 곳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오래 지킬 때에는 정당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정당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한 기운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설혹, 여기에서 자신이 부정한 것이 아니고 악 된 것이 아닐지라도 부정한 기운과 악(惡)된 기운이 그 사람을 거짓 된 곳으로 끌고 가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고 사소한 장난처럼 시작하였던 것이 차츰 부정과 노닐게 되고 결국은 부정으로 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운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삶의 형태는 모두가 다르고 삶에서 펼쳐지는 운명도 모두가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형태가 처음 갈라지는 것은 마치 큰 물줄기가 발원지에서 갈라지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애초에 선(善)의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은 난관을 만나더라도 해쳐나가는 것이요, 나중에 선(善)의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은 죽음의 고통을 받고서야 헤쳐 나가는 것이요, 나중에도 악(惡)의 줄기를 계속 가는 사람은 죽음의 뒷날까지도 그 고통과 번뇌가 끝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참으로 묘(妙)한 것이다.

악(惡)된 것들은 기쁨이 넘치고 쉽게 귀해지며 순간순간이 달콤하다. 반면에 선(善)한 것들은 무덤덤하고 환희가 없으며 쉽게 구해지지를 않는 것이다. 그리고 기쁨이 차츰 넘치게 되고 기쁨이 넘쳐서 쾌락이 되며 다시 쾌락이 넘쳐서 죄를 보게 되고 이때에 죄를 범해 다시 쾌락을 찾는 것이다.

물론, 기쁨이 곧 즐거움이 되고 즐거움이 곧 인생의 행복이 아니겠느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쁨에서도 자신의 만족을 아는 사람은 즐거움에서 자신을 멈추겠지만 만족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은 넘치게 되니 그 기쁨이 쾌락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하나의 참된 끈을 잡느냐와 잡지 못하느냐? 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나눠지는 것이고 참된 생각과 인연을 맺었느냐, 맺지 못하였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참된 운명을 가지느냐와 못 가지느냐? 로 나눠지는 것이며 참된 운명에서 어떻게 알아 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복된 삶을 살았느냐와 못 살았느냐로 나눠지는 운명(運命)의 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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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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