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랐을 때에 교만해 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에서 어리석은 마음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것의 없다. 그래도 교만해 진다. 그래서 다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묘하기도 하다. 오르기는 어려워도 떨어지기가 그렇게 쉬울까? 구하기는 어려워도 달아나기가 그렇게 쉬울까?

허지만 병은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아니했건만 잘도 찾아온다. 하기야! 하늘이 하시는 일이니 하늘의 법도가 어디로 갈까? 넓은 하늘이라 공평한 것이야 틀림이 없고 깊은 하늘이라 지혜로운 것이야 틀림이 없으며 맑은 하늘이라 청명한 것이야 틀림이 없으리라.

많았을 때에 더욱 욕심을 부리는 것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에서 어리석은 마음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알더라도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부족한 사람이 된다. 하기야!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가진 자가 오래 지킨다면 부족한 사람이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그것이 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천년을 지킬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설혹 죄가 되고 영혼을 괴롭게 하더라도 가지고 싶다. 다음의 生이야 다음의 生일 터이니….

오늘의 내가 배불러서 포만했다면 그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녕 하늘의 일에서 지금의 生만을 그 처음이요 끝이라 하겠는가? 받아가는 업보에서 공평한 것은 틀림이 없고 세월에는 용서가 없음도 틀림이 없으며 生 이 죽음을 향한 목적임에도 틀림이 없으리라.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마음속에 머무는 것을 성품이라고 하며 성품에 따라서 貴(귀) 賤(천)으로 구분을 하는 것이니 사람은 누구라도 貴(귀)를 가질 수가 있는 타탕한 이유가 된다. 많이 없더라도 스스로가 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 스스로가 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재물이나 권력은 결코 귀한 것이 아니다.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을 때에 貴(귀)가 되고 경건한 자세가 깃들어 있을 때에 귀가 되며, 성실한 마음이 깃들어 있을 때에 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물과 지위를 가지고 貴(귀)준를 만들 수가 있다고 착각을 한다면 그러한 마음이 생겼을 때에 이미 賤(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貴는 밖에서 만들어 질 수가 없는 숭고한 정신세계이며 성실한 마음이며 아름다운 자태가 귀의 근본이 된다. 그래서 貴에는 평등과 자유가 있고 화합의 가치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화합에는 너와 나의 특별한 구분이 없고 다소(多小)의 구분이 없으며 고저(高低)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賤(천)한 것이야 재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스스로의 마음에게 그 죄를 묻게 될 것이고 貧(빈)한 것이야 마땅히 스스로의 태만에게 그 죄를 묻게 될 터이니 省察(성찰)하는 자세에서 능히 신비로움을 보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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