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일에 어느 작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 출판기념회라고 하기에는 참석자수가 예상외로 많았다. 수필을 창작하는 일은 여느 장르와 같이 살을 깎는 작업이다. 더구나 수필문학은 피천득의 언명과 같이 그야말로 '청자연적'을 창조해 내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의 창작물을 엮어 출간하는 일이야말로 그 노고가 얼마나 하랴.

이를 기꺼워하고 상찬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초대받은 참석자 모두가 금쪽같은 귀중한 시간을 반납해 주인공의 노고를 칭찬하고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일 게 분명하다. 아무튼 많은 이들이 출판을 축하해 주기 위해 성황을 이뤘다. 잠시 후 출판기념회가 시작되고 사회자가 참석한 내빈을 소개 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처음엔 시간 관계로 단체장만을 소개하겠다고 하더니 종국에는 부단체장도, 일반인들까지 내키는 대로 소개를 하는게 아닌가.

사회자는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내빈 소개에 혹시 빠진 분이 없는가요?"하고 참석자들을 향해 물었다. 혹 빠진 분은 진행 중이라도 다시 소개를 하겠다고 좌중을 둘러보며 양해를 구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라면 필시 모두가 내빈이련만, 어디까지가 손님이고 어디까지 내빈이란 말인가. 내빈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박수를 치고 있자니 지루하기도 하고 짜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잖아도 입구를 들어설 때부터 탁자 중앙에 꽂힌 푯말을 보고 심사가 조금은 뒤틀린 터였다.

앞자리는 귀빈석, 중앙은 내빈석, 뒷자리는 일반 회원석과 일반인석이라고 씌어 있었다. 축하하러 온 자리면 모두 축하객에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귀빈은 어떤 사람이고, 내빈은 또 누구란 말인가? 참석한 사람 모두가 어렵고 귀한 시간을 내어 온 귀빈이 아니던가? 아마도 귀빈석이란 주머니 꽃을 단 사람의 자리인 듯 했다.

각종 행사 때마다 주머니 꽃을 단 사람들을 자주 본다. 개인의 행사인 경우 본인 외에도 진행자나 축사를 하는 사람, 특별히 내빈이라 소개받는 사람들까지 줄줄이 꽃을 단다. 행사를 축하하러 온 사람 중에 특별한 사람만을 내빈 소개에 담고 꽃을 달아 주는 것이 우리의 관행이다.

그런데, 수많은 참석자 중 20여 명의 내빈을 제외한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루한 행사에 언짢은 심기를 감추고 있는 것을 주최 측은 아는지 모르는지.행사에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귀빈석과 일반석을 구분 짓는 일부터 없앨 일이다.

그리고 참석자 모두를 소개하지 않을 것이라면, 내빈을 소개하는 순서는 빠져야 한다. 내빈에게 달아주는 주머니 꽃도 생략하고, 그 날의 주인공만 꽃을 달고 축하를 받을 일이다. 아마도 그렇게 행사를 진행했다면 한 작가의 창작에 바친 그동안의 노고는 더욱 빛이 났을 일이다. 귀한 시간을 내 행사장을 찾은 지인들이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해주는, 겉치레 보다 내실이 더 중요한 새로운 풍토를 조성해 나갔으면 싶다.

▲ 김정열 충북도 식품의약품안전과·수필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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