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누가 물고기의 간절한 바람을 듣고나 있을까요? 그의 배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해 볼록하고 몸빛은 은색 물결의 화려한 광채로 눈부시도록 아름다우며 그의 맑은 눈동자는 별빛이 아롱거리고 가냘픈 지느러미는 금방이라도 갈라질 것만 같은데….

여기에서 그가 애타게 소원을 하고 있다. 더러워진 강물은 마실 수가 없어 진지 오래고 그물에 걸린 몸으로야 맑은 물을 찾아 나설 수도 없으며 대지의 따사로운 열기는 비늘사이로 자꾸만 태워오는데 물고기의 간절한 바람을 누가 듣고나 있을까요?

그래, 물을 봐야 물을 마시지 않겠나. 물을 만나야 헤엄을 칠 수가 있지 않겠나! 그래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새로운 생명을 맑은 물이 흐르고 수초들이 무성한 그곳에서 은밀한 탄생의 아픔을 노래해 훗날 당신의 아이들에게 소중한 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도 당신이 아니면 그 누가 있어서 알까요? 오로지 물을 그리워하는 것이야 물고기이니 당연하다 하거니와 바람을 바람으로 갈구하는 것은 물속의 물에 있음일까요 아니면 하늘 위의 하늘에 있음일까요?

그의 간절한 바람도 마음속에서 생겨났으며 그의 목마른 그리움도 마음속에서 생겨났으며 그의 후회의 눈물도 마음속에서 생겨났으리니 후회의 슬픔 속에서 그는 조심을 배울 것이고 후회의 고통 속에서 그는 順理(순리)를 배울 것이며 후회의 虛無(허무) 속에서 그는 律法(율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하늘 위로 낮은 구름이 몰리어 오니 그의 마음속에서는 차라리 슬픔이 커져 버리고 그의 마음속에서는 차라리 두려움이 생겨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렇게도 하늘은 소리 없이 말씀을 하시는데 하늘의 가르치심을 다른 물고기들은 알까요.

그 누가 모를지라도 그 만은 배웠을 터이니 그의 마음속에는 敬(경)한 가운데에서 敬(경)이 머물렀기에 그를 항상 지켜 주리라네. 福(복)이라 함은 하늘에 소원하거나 제를 지내는 그곳에 머물지 아니하고 소원하는 善(선)한 마음과 제 지내는 敬(경)한 마음가운데에 福(복)이 머무르는 까닭이리다.

다른 한편, 인간과 인연의 삶을 보면 인간이 신체의 기능을 버리지 못하는 한은 먹기 위한 경쟁이 생겨나는 것이고 이 경쟁 때문에 발전과 다툼이 발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정신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정신기능을 수행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도 필연이다.

즉, 인간의 참으로 순수한 동기가 삶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오염되는 것이라면 이 오염된 인간의 기능을 청소해야 하는 임무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필연의 양면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슬픔을 간직하는 것이지만 이 양면성 때문에 인간의 삶을 영화롭게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삶에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다양한 인간관계는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며 다양한 기회는 또 다시 다양한 사회가 형성되고 다양한 사회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만드는 순환과정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