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포럼>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관리학과 교수

지난 해 11월 25일 한나라당이 발표한 '대학 강국 프로젝트'에도 명시된 바 있지만, 다음 달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것은 모든 대학이 비슷한 조건에서 뛰는 무한경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그동안 국립대학에 지원하던 천문학적 재정을 활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날로 그 수요가 증가하는 복지분야의 선진화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첨단 과학기술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립대 법인화는 지금까지 방만하게 운영돼 온 대학으로부터 군살을 빼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한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전쟁 직후 중앙정부 주도로 설립된 국립대학들이 그동안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인재육성에 기여한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조직체들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효용성에 있어서 부침을 겪는 것처럼 국립대학 역시 오늘날에는 그 본래의 취지를 이미 상실했다고 본다. 때문에 체제변경은 당연한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가난하면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과거 어려운 시대의 설립이념은 오늘날 전혀 의미가 없다. 현실적으로는 부자이면서 공부도 잘 하는 학생들이 국립대학을 선호함으로써 오히려 가난한 학생들은 사립대학으로 밀려나 비싼 등록금까지 지불하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고질적인 학벌주의에 기인하는 현상이다.

또한, 과거 저임금 때문에 사기업체를 향하는 우수 인재들을 저렴한 등록금으로 유인하여 교사로 육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역시 시대변화에 따라 그 임무를 완료했다고 본다. 오늘날 교사들의 높은 급여와 사회적 안정성 때문에 교육 및 사범계 대학에는 부유하면서도 우수한 인재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고 있지 않은가? 이미 국가의 재정지원으로 교사를 육성하지 않아도 되는 전환점을 넘어섰다. 국가는 이제 사립과 국립을 떠나 선별적으로 가난하고 우수한 학생들에게 재정지원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

실제,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부터 국립대학 법인화를 추진했지만 조직 구성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번번이 좌절되었다. 반면, 일본은 지난 10년 이상 경제침체를 겪으면서 중앙정부의 방만한 재정규모를 줄이고 동시에 국립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000년대 초반 불과 3년 만에 전국 모든 국립대학을 법인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일본이 큰 사회적 갈등 없이 국립대학 법인화를 성공시킨 이유는 역시 일본인들의 집단주의 정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이나 소집단의 이기주의가 대의 앞에 항상 복종하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전통은 부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국립대 법인화 조치 이후에도 잡음이 들려오지 않는 이유는 실제 법인화 된 대학들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국립대학들이 법인화 이후 세계적 순위가 높아지고 또 재정 면에 있어서도 정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때보다 개선되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ceo 출신 대통령 당선인은 대학운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철학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국립대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법인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 국립대들은 법인화를 대비하여 그동안 대폭적으로 기성회비를 인상하면서 재정 확보책을 마련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립대학들도 시대의 요구에 굴복하여 법인화를 받아들이기보다 일본에 앞서 법인화를 추진하고 경쟁력을 길렀더라면 지금은 대학교육시장 전반의 경쟁력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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