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제품에 차별화로 '맞불'


"힘으로 쇠를 달구고, 두드려 연장 만드는 일이야 누군들 못하겠어. 쇠와 불이 하나가 돼야 진정한 대장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화덕에서 금방 꺼내 시뻘겋게 달아 오른 쇠를 바라보는 최용진씨(61·대장간 부문 고유 기능 전승자)의 눈은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한증막' 더위 속에 이마에서 연신 흘러 내리는 땀방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망치로 쇠를 두드린 뒤 화덕에 넣었다 빼기를 수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최씨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에서 40여년간 '쇠붙이·화덕'과 함께하는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에서 농사를 짓고, 방앗간 일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어린 시절을 보낸 최씨는 한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먹고 살길조차 막막했다고 한다. 배를 곯기를 밥먹듯 하던 그가 16세가 되던 해 대장간 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솔깃해 충주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매형을 찾아가 쇠붙이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어느 정도 대장간 일에 자신이 붙은 그는 20살 때 증평에 자리를 잡은 이후 현재까지 40여년동안 같은 일을 해 오고 있다. 증평에 자리를 잡은 뒤 증평은 물론 인근 진천·괴산의 장날을 찾아 다니며 밤새 만든 물건을 내다 팔았다. "처음에 다른 대장장이 보다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데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아 물건을 팔기가 쉽지 않았다"는 그은 수년간 남들보다 덜 잠을 자고, 덜 쉬면서 열심히 낫과 호미·칼 등을 만드는 데 몰두 했다. 그러자 점차 그의 물건을 믿고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제품이 좋아졌다는 방증이다. 대장간 부문 고유 기능 전승자가 된 이후부터는 유명세까지 타게 돼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지금도 제품 하나하나에 소홀함이 없이 혼을 불어 넣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1980~1990년대 들어오면서 대장간이 하나, 둘 문을 닫거나 대량 생산을 위해 기계로 물건을 만들어 냈지만 그는 지금도 전통 방법을 고집하고 있다. 최씨가 만드는 제품은 호미·낫· 괭이 등 농기구와 칼, 작두, 가위를 비롯해 50여종에 달한다. 최근들어 중국산 호미·낫 등이 들어오면서 최씨도 중국산과 차별화하기 위해 미니 장식품을 만들어 관광 상품을 개발해 팔고 있다. 옛 시골에서나 볼 수 있던 붓으로 글씨를 쓴 조잡한 간판의 안내를 받아 점포 안으로 들어서면 30여평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손 때 묻은 화덕과 호미·낫·삽·칼 등이 그의 고집스런 삶을 대신한다. 최씨는 "시대가 산업화되면서 낫과 호미, 괭이 등을 찾는 손님이 점차 줄고 있지만, 농촌이 있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는 한 대장간 일을 평생하겠다"고 말했다. /정태희기자 chance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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