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험> 윤현자 충북 시조문학회 사무국장

명절 준비차 어머님 방 대청소를 하다 벽에 걸어둔 어머니의 외투를 떨어뜨렸다. 세게 밀치지도, 큰 힘을 가한 것도 아니고 털이개 몇 번 흔들어댄 것뿐인데….

떨어진 외투를 황급히 집어 들고 보니 외투를 걸었던 못에 녹이 슬고 이미 벽과의 틈새가 벌어져 헐거워진 상태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어느 날엔가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 콘크리트 벽에 쾅쾅 박혀 꽤 오랫동안 온몸으로 사력을 다해 뭔가를 걸고 있었을 녹슨 못 하나!

선뜻 빼버리지 못하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 가만히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문득, 고난지난 했던 어머님의 한평생을 보는 듯해 쉽게 쓰레기통에 버릴 수가 없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부모님의 권유로 재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손 귀한 집안의 아버님께 시집을 와, 내 남편을 비롯해 다섯 아들과 두 딸을 두셨으니 어느 한 날 바람 잘 날 있었으랴.

게다가 사람 좋기만 하고 실속 없던 아버님이 객지로 떠돈 직장 생활 말미에 작은집까지 두는 바람에 칠 남매를 오로지 당신 혼자서 키우셨다.

남편도 떠난 종가에서 며느리로서의 책무를 다하며 사대봉사를 하고 칠 남매를 홀로 키우는 동안, 때때로 참기 힘든 어려움도 많았지만 손 귀한 집안에 와서 아들을 다섯이나 낳았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틸 수가 있었단다.

아들이 뭐 길래, 자식이 뭐 길래, 여자로서의 당신 인생은 가슴 켜켜이 묻어둔 채 그 많은 날들을 견디셨을까.

남편과 결혼한 신혼 초기엔 어머님의 삶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당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에 대해서도, 남편을 빼앗아간 작은 부인에 대해서도 어찌 그리 너그러울 수 있나 싶어 때로는 그 너그러움에 화가 치밀기도 했다.

내 나이 지천명, 어머님도 내년이면 팔순이 되신다.

곱던 얼굴엔 한두 점 검버섯도 보이지만 아직도 연세에 비해 고운 모습이다. 나도 이제 언뜻 하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님의 삶도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비록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가슴 깊이 묻어둔 울음이 어찌 없었으랴!

속으로 삭인 어머니의 그 울음을 딛고 내 남편과 형제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오늘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녹(綠:rust)은 공기 중에 있는 산소, 수분, 이산화탄소 등이 산화작용을 하여 쇠붙이의 표면에 생기는 물질로 광택을 잃게 하고 서서히 제 몸을 먹어간다.

벽에 박혀 있던 이 못도 그간 무수한 날들을 보내며 때로는 눅눅한 습기에, 때로는 목까지 바싹바싹 타오르는 갈증에, 또 때로는 제 몸조차 지탱할 수 없는 무거운 짐스러움에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 어려운 고비 고비를 넘길 때마다 녹이 슬고 이제 제 몸의 반도 남기지 않은 채 야위어 셔츠 하나 걸어둘 수 없는 몰골이지만 비로소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픔도, 미움도, 상처마저도 제 몸 다 부수고 녹여서야 비로소 아무는 것임을 얼핏 헤아려 본다.

사력을 다해 떠받쳐야 했던 숱한 날들이 꽃잎처럼 손바닥에 떨어져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더욱 붉다.



온통 썩고 부서져야
비로소 잊혀지고 말
부식의 세월만큼 상처도 아물 건가
허전한
등 뒤로 쌓이는
마흔 아홉 붉은 꽃잎.

(본인의 졸시 "녹" 일부)

/윤현자 충북 시조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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