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라윤도 건양대 교수

얼마 전 며칠간 각 신문의 1면을 도배하다시피 한 불타버린 숭례문의 흉측한 사진을 보면서 14년 전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전 직장에서 뉴욕에 근무할 때인데 매일 아침 일과는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는 일이었다.

1994년 11월 어느 날, 그 날은 마침 집에 모아놓은 폐지를 학교에 갖고 가는 날이어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작은 아들이 뉴욕타임스 일주일 치를 묶은 신문뭉치를 들고 차에 탔다. 그런데 차 안에서 아이가 신문묶음을 뒤적이며 계속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무엇을 찾는가 물었더니 '그 신문'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잘 떠오르지 않아 재차 물었다. "그 다리 끊어진 신문 말이야" 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아이가 찾아다며 묶음에서 빼낸 신문은 며칠 전 뉴욕타임스 1면 톱 사진으로 한 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엄청난 크기로 성수대교 붕괴 모습이 실린 것이었다.

그때서야 성수대교 붕괴로 수십 명이 사상한 뉴스가 온 미국신문을 뒤덮었던 뉴스가 보도되었던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가 유난히 풀이 죽어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반 아이들이 "너의 집이 서울 이라며 너도 이 다리 건너봤어?" 하며 조롱하듯 물어보는 것이 너무 창피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서울올림픽을 자랑하고 올림픽 경기를 몇 개를 직접 가서 봤다는 등 뉴저지 변두리 아이들에게 뻐기며 서울생활을 자랑해왔던 아이의 코가 납작해졌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 기사가 실린 신문을 학교에 가져가 아이들이 보게 되면 행여나 다시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그 신문을 빼려고 애썼던 것이다.'oh! seoul south korea'로 되어 있던 그 기사의 제목도 8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 90년대 번영의 시기를 구가하며 거들먹거리기 시작한 한국인들을 은근히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는 것이었다. 1000만 시민이 살고 있는 서울시내 한복판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큰 다리가 끊어져 달리던 차들이 강물 속으로 직행하는 광경은 뉴요커들에게는 허드슨강과 뉴저지를 잇는 조지워싱턴브릿지나 맨해튼 남동쪽에서 롱아일랜드를 잇는 브루클린브릿지가 끊어진다는 것과 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렇지, 한국은 여태 그런 나라야"라고 하는 비웃음의 표현이 그대로 서려 있었던 것이다.

이번 참변은 7000만 한민족 전체의 자존심을 짓뭉갠 것은 물론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자괴감 또한 크게 했다.

반만년 찬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고 세계 최장수인 600년 왕조를 지켜왔다는 우리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단 몇 시간의 화마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시쳇말로 '뚜껑열린' 숭례문의 불탄 사진을 보면서, 14년 전 끊겨진 성수대교의 사진을 기억하는 우리 기성세대들은 더욱 분노와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 변명하고, 그들의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다.

결국 이번 참변은 '뚜껑열린 대한민국'의 현재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탓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총체적인 잘못의 단면으로 인식하고 국민 모두가 뼈아픈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과대포장' 되어 왔거나 혹은 외화내빈(外華內貧) 으로 번드르르 하게 보여 왔던 우리의 자화상을 냉철하게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빈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한다.

/라윤도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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