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고창 청보리밭

▲봄 풍경의 극치, 보리밭. 낮에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사진 위)밤엔 달빛을 담은 황금빛 물결이 일렁인다. (사진 아래)
보리 바다다.

고창의 '청보리밭'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 일원).

인동의 시간을 보낸 청보리가 언 땅을 뚫고 나온게 언젠가 싶더니 벌써 보리 언덕을 뒤덮고 봄꽃의 향연에 지친 눈을 유혹하고 있다. 벌써 여름이련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넓은 보리밭이 있으리라고 상상한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리를 만져보고 그옛날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회를 경험할 지도 모른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만감이 교차할 수도 있다. 어릴적 같이 놀던 친구 생각에 내가 어느새 이렇게 세월을 줄달음질쳐 왔는가.

멀지 않은 옛날, 굶주림과 한 서린 세월을 보냈던어른들은 듣기만 해도 서러운 것이 보릿고개다. 그래서 보리라는 말은 남다르다. 그러나 이제는 그 한스러웠던 굶주림과끝모를 절망의 시간에서 잉태된 푸르름이 그 옛날을 회상하고 추억을 더듬어 보게한다.

# 보리바다 걷노라면 싱그러움 절로

언덕 아래부터 뱀처럼 난 길을 따라 보리밭 사잇길을 걷노라면 절로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붉은색 황토빛도 맨발을 유혹한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아 발목을 조금 올라왔을 뿐이지만 언덕 아래서 위쪽으로 올려다 보면 아늑한 몽골의 초원 같은 느낌도 든다.

청보리밭의 보리는 주변의 논밭이나 아직 녹음이 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산과도 대비된다. 아직 녹음은 멀었지만 벌써 부지런을 떨며 일어선 보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해서다.

이곳은 국회의장을 지낸 진의종씨와 그의 부인 이학여사가 1만여평의 대지에 보리를 가꾸고 심어 명소화 했다.

그러나 이곳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관광지가 아니라 원래 보리농장이다.

이들은 지난 1960년대에는 뽕나무를 심어 가꾸었고, 70년대에는 목초를 재배하여 한우 비육사업을, 80년대부터 보리,땅콩,수박 등을 재배하며 대형 농장의 기틀을 만들어 왔다.

이어 지난 92년초에는 아들 영호 씨가 귀농하여 정착하면서 10여만 평의 보리, 콩, 메밀 등을 대규모로 재배했고 4천여 평의 첨단 화훼단지 등 관광농원의 면모를 갖춰왔다.

# 보리 메밀 가꿔 관광농원으로

처음에는 관광농원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했지만,작물재배를 위해 심은 청보리와 메밀 재배가 눈요깃거리로 소문나면서 사진가 들의 눈에 띄었고, 이것을 점차 알려져 지금의 명성을 얻게됐다고 한다. 농림부나 문화관광부 등 관련 행정부서에서는 이러한 관광객 증가가자연스럽게 경관 농업으로 발전했다고 평한다.

보리는 10월 말에 파종하고 다음해 6월에 수확하는 작물이고, 메밀은 보리 수확 후에 파종을 하면 9월 초에 꽃이 핀다. 그래서 봄이면 푸른 청보리밭이 장관을 이루고 보리 이삭이 익는 6월이며 마치 가을 걷이를 앞둔 벼처럼 누런 황금색을 띈다. 보리 수확을 끝내고,메밀을 파종하면 9월초에는 하얀 메밀꽃 물결이 출렁인다.

그러나 봄의 청보리가 단연 압권이다. 푸르름은 기본이고 조금더 자라면 틈이 없는 보리밭에 연두빛 옷을 입고 들어누우면찾기 힘들것 같기도 하다.

# 맨발로 즐기는 청보리 축제 14일부터

청보리밭 축제는 여기에 볼거리를 더한다.

이곳에서는 오는 14일부터 청보리축제를 시작한다.약 한달간 열리는 축제는 보리피리 만들어 불기, 보리개떡 만들기, 두부만들기, 전통놀이 체험, 짚공예 만들기 체험 등 과거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이 깊었던 것들이 주를 이룬다.

상설전시관에는 경관농업 사진과 전통 농경유물이 전시돼 아이들에게 농업이 전부였던 우리의 과거 삶에 대한 산교육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축제기간 동안 난타공연과, 동력 행글라이더 퍼레이드, 어린이 글 그림대회, 판소리 마당, 국악 대공연, 보리관련 학술 전시회, 소달구지 타보기 등 다양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맨발이건 신을 신었건, 햇빛이 봄의 대지를 한껏 녹초로 만든 오후 4시경 시작하는 보리밭 사잇길 길놀이다. 가족과 함께 무릎까지 오는 보리밭길을 걸어 언덕을 한바퀴 걷다보면 회색의 도시에서 쌓여있던 온갓 상념이 청보리의 푸르름에 씻기운 것 처럼 가쁜하고 상쾌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일까 어떤 해에는 축제를 일주일 더 연장하기도 했다.어른들에게는 회상의 추억을,아이들에게는 초원같은 푸르름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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