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류재화ㆍ시인ㆍ괴산 신기보건진료소장

▲ 류재화ㆍ시인ㆍ괴산 신기보건진료소장
저녁 8시가 지나면 돌맹이를 던져도 맞을 놈이 없다는 자조적인 말이 들리는 괴산에 산지도 어느덧 17년에 접어든다.

90년에 처음으로 괴산으로 발령을 받고 시골에 살아야하는 내 직업에 대한 단순한 이유로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고 아슬아슬하게 운전을 익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프라이드를 몰고 끝이 없을 것 같은 비포장도로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달려 청천면의 한 오지마을로 향했다. 차창가로 지나는 산과 들을 보면서 '여기가 괴산이구나 ' 산수가 수려하며 물이 참 맑다는 생각을 했다.

진료소를 내려다 보던 태경(泰鏡)대며 지척에 있던 낙영산과 공림사는 그곳에서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낙영(落影)산은 산의 그림자가 비추다,또는 떨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산인데 산에 관한 유명한 전설이 전해진다. 당나라의 고조가 세숫물에 비친 산의 그림자를 보고 화가를 불러 이 산을 그려보라고 한 후 나라안을 뒤져 그림속의 산을 찾아보게 하였다.

하지만 자기네 나라에서는 찾지 못해서 신라에서도 찾아보았으나 또한 찾지 못했는데 고명한 승(僧)이 나타나 이 산의 위치를 알려주어 찾았는데 청천면 사담리에 위치한 낙영산이라한다.

우리는 괴산군내 각지의 진료소에서 흩어져 근무하다가 한달에 한번 월례회의를 통해 모임을 가졌는데 매달 20일경이었다.

월급도 받고(그때도 통장으로 나왔지만)모여서 정보도 교환하고 근간의 이야기를 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그 월례행사를 걸러야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괴산의 지형적 특성상 모두들 고개를 넘어야했는데 미끄러운 눈 길을 차가 다닐수 없기 때문이었다. 눈 쌓인 고갯길을 바라하며 보고싶은 동료들을 만나지 못하던 일이 엊그제 같기만하다.

10년전 내 아이가 태어나던때는 유아용품점에 들러서 아이 월령에 맞는 옷을 고르며 다양한 유아용품을 사는 적이 많았다.

그때 괴산에 4-5개였던 유아용품점은 지금 단 1곳만 문을 열고 있으니 10년동안 괴산은 나날이 다르게 인구가 줄어들고 황폐해 가고 있는것이다.

인구감소의 악재인 증평의 분군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농업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는 이농현상과 소득기반이 취약하여 젊은 인구가 유입되지 않아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농촌마을의 실상,더 좋은 대학진학을 위해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가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

또한 그즈음 괴산에 불어 닥친 괴산댐을 보강한다는 발표와 함께 어느 어느 지역이 수몰되네하는 놀랄만한 사건.이 사건들은 어느것하나도 괴산의 발전이나 인구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것들이었다.

지금은 건교부의 달천강 댐을 건설한다는 발표로 이것을 저지하지 못하면 정말 주민들 말처럼 괴산군은 존립자체가 위험한 정도이다.

이런 시기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賞)하나가 있다.

지역의 모 신문에선 사설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이 상의 진면을 밝혀줘 괴산에 사는 사람으로서 내심 고마움을 느낀 적이 있는데 나또한 다시 한번 이 상(賞)의 눈물겨운 뜻을 바로 보아 달라고 외치고 싶다.

가슴 깊이 괴산을 사랑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상을 주기도 어렵고 또한 받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 모두가 떠나간 괴산군을 나는 홀로 지키고 싶지 않다. 옷깃을 스치고 복닥거리며 당신과 내가 이 아름답고 산자수명한 괴산에서 함께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웃인 당신에게 송이송이 꽃을 뿌려주리라. 아름드리 우거진 괴산의 느티나무 그늘아래, 눈부신 괴산의 발전을 바라는 우리 모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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