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군사회담 예정..장관급회담 조기개최론 주목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초기 행동들이 가시권에 들어온 가운데 남북 간 최대 현안이던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의 세부 이행계획까지 마련되면서 하반기 남북관계의 향방이 주목된다.

정부는 일단 7월 중 열기로 이미 합의된 제14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와 제6차 장성급군사회담은 물론 기합의됐지만 열리지 않고 있는 각종 실무협의도 개최해 접촉면과 협력 분야를 다기화할 방침이다.

특히 남북관계가 6.15공동선언이 마련한 틀 내에서는 이미 발전의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상황인식이 나오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장관급회담의 조기 개최론은 물론 2차 남북 정상회담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 남북관계 걸림돌 속속 해결 = 남북관계에서는 6월말 대북 비료 30만t의 지원을 끝내고 쌀 차관 40만t의 북송이 시작된데 이어 오는 25일부터 8천만달러 어치의 경공업 원자재 수송에 착수, 안정적 발전기반이 확보된 상황이다.

신규 사업인 경공업 원자재를 포함해 연례적 대북 지원.협력사업이 이행됐거나 이행과정에 진입함에 따라 남북 간에 소모적인 신경전을 야기할 수 있는 소재들이 상당 부분 제거됐기 때문이다.

외교 트랙에서는 오는 14일께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조치에 대한 대가인 중유 5만t 가운데 우선 6천200t이 함경북도 선봉항에 도착하면 북한의 영변 5MW 원자로 가동중단 조치가 맞물리고 6자회담도 곧이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 6자회담이 개최된 후 8~9월께는 북핵 2.13합의에 따른 6자 외무장관회담도 열릴 전망이다.

이런 흐름은 한반도에 남북회담과 6자회담이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구도가 형성돼 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물론 6자회담이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로 표류하거나 남북관계에서 대선이 변수가 되면서 전반적 교착 국면에 빠질 우려도 있지만 적어도 8월까지는 긍정적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런 맥락 속에서 하반기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를 놓고 고민을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 달에 열기로 했던 제14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의 개최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조율도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경협위.장성급회담 관심= 이런 상황에서 일단 남북이 합의했던 일정을 소화하면서 접촉면과 대화 분야를 확대해 나가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7월중으로 잡힌 제14차 경협위와 제6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등을 열어 경의선.동해선 열차개통과 수산협력, 한강하구 골재채취, 임진강 수해방지, 포괄적 군사보장방안을 구체화해 나가자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6월에 열지 못한 제1차 제3국 공동진출 실무접촉, 제1차 자연재해공동방지 실무접촉, 제1차 과학기술협력 실무접촉 등 새로운 분야의 회담도 개최해 신규사업을 발굴해 나갈 필요성도 맞물리고 있다.

당장은 10일 열릴 예정인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남북 간 군사실무회담이 관심사다. 여기서 절충점을 찾을 경우 장성급회담으로 이어져 남북경협의 숨통을터줄 수 있는 군사적 보장조치도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6자회담이 멈춰서지 않는 한 다방면에 걸친 대화 동력이 이어지는 것은물론이고 협력분야도 다기화되면서 남북관계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 남북관계 한계론 속 장관급회담 조기개최론 부상 = 반면 정부 안팎에서는 제22차 남북장관급회담의 조기 개최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어느 정도 힘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6월1일 끝난 제21차 회담이 쌀 차관 문제에 막혀 남측이 정식 의제로 제시했던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를 제대로 협의하지 못하는 등 겉돌았던 만큼 장관급회담을 빨리 열어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특히 최근 정부 핵심 당국자가 "6.15 공동선언이 마련한 틀 내에서는 남북관계가 한계상황까지 발전된 측면이 있다"며 밝힌 이른바 `남북관계 한계상황론`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당국자는 당시 "앞으로 보다 큰 과제를 위해서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 준비가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계기`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는 6.15공동선언 아래에서는 남북관계가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까지 갔지만 정치군사 분야가 `병목`이 되면서 전반적인 한계상황에 봉착한 만큼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실제 남북관계에서는 북측이 2005년 12월 이후 꾸준히 제기중인 이른바 근본문제가 원초적 걸림돌이 되면서 경협의 진전까지 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 근본문제에는 상대지역 참관지 제한이나 한.미 군사연습 중단 등의 요구도 있지만 실제 군사 분야에서는 북측의 해상경계선 재설정 요구가 뜨거운 감자다. 해상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핵심인 셈이다.

큰 틀에서 보면 북측은 NLL 대신 해상 경계선을 다시 긋자는 것이며 우리측은 현행 NLL을 존중하면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열어 다른 군사적 신뢰구축 및 긴장완화 조치와 함께 논의하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런 흐름에서 북측의 선(先)제의로 10일 열리는 군사실무회담이 NLL 문제의 벽을 넘어설 경우 제22차 장관급회담의 조기 개최를 통해 평화정착 분야의 의제를 만들고 제6차 장성급회담에서는 이에 따른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 가능성은 낮지만 북측이 재설정을 통한 근본적 해결 요구에서 후퇴해 북측 선박의 해주 직항로 이용 허가 등을 얻어내는 대신 우리측이 제시한 충돌완화를 위한 보완조치에 응할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 경우 수산협력, 열차개통, 한강하구 모래 채취 등 핵심 경협사업들이 군사적뒷받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정부가 추진 중인 군사적 긴장완화 노력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예컨대 국방장관간 핫라인 개통이나, 군 인사 교류 등 신뢰구축 방안은 물론 정부가 중장기 과제로 연구 중인 NLL 해역에서의 바다목장, 평화공원 조성 같은 사업도 거론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NLL 해법은 물론 정치군사 분야의 의제 설정을 통해 현재의 한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장관급회담이나 장성급군사회담 수준이 아닌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회의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6자회담이 4자 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지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8.15를 전후해 정상회담의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을 엿보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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