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화합에 노력 정권교체 위해 백의종군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이제 잊어버립시다. 하루 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다시 열정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돌아와서, 저와 당의 화합에 노력하고, 열정을 정권 교체에 쏟아주시기 바랍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는 20일 자신의 패배가 확정된 뒤 행한 연설을 통해 경선 승복을 약속하면서 차분하지만, 낮고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이같이 당부했다.

"저는 늘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는 인사도 전했다.

행사장인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은 일순 고요한 침묵에 잠겼다. 곧바로 우레와같은 박수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아름다운 패배'의 길을 선택한 박 전 대표는 앞으로 어떤 진로를 모색할까.

대선후보 경선 과정이 치열했던 만큼 석패한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는 대선 체제에 본격 진입하는 한나라당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패배를 인정한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며 깨끗하게 경선 결과를 승복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부터 저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백의종군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언급으로 미뤄 한나라당이 향후 대선 체제로 본격 전환할 경우 박 전 대표역시 어떤 식으로든 이 전 시장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선 전 이 전 시장이 내놓은 '선대위원장' 제안을 박 전 대표가 당장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정권교체에 대한 협력 방침을 밝히면서도 '백의종군'을 언급한 것은 이를 시사한다는 것이다. 한 핵심 측근도 "선대위원장이야 이 후보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 위주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박 전 대표 주변에서는 선대위원장까지 맡아서 확실하게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정권 교체"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영.호남을 누비며 10년만의 정권교체 행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략적 측면에서 자신의 향후 보폭을 넓히는 길도 된다는 지적이다.

1971년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대선 경선.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에게 막판 역전패를 당했지만 김영삼 후보가 전국 지지유세를 벌였다는 얘기도 일례로 거론된다.

이명박-박근혜 협력 체제가 가동되더라도 대선 끝까지 순항할 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특히 향후 대선정국 상황에 따라 새로운 국면이 올 수 있다.

대선 국면이 본격 시작되면 범여권의 이 전 시장에 대한 총공세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동안의 의혹이 확인되거나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전 시장 지지율이크게 떨어지는 등의 상황에서 후보교체론, 낙마론이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본인의 의지와는 별도로 다시 박 전 대표가 대안으로 거론되면서 새로운 선택을 압박 받을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비록 패했지만 얻은 성과도 적지 않았다.

특히 경선 투표의 뚜껑을 연 결과 조직력의 열세를 딛고 당원, 대의원, 국민참여선거인단으로 구성된 직접 선거인단의 표에서는 이 전 시장을 앞서며 밑바닥 당심에서의 대단한 저력을 확인시켰다.

또 대통령의 자제가 대통령에 도전한 것도, 여성이 그렇게 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던 만큼 그는 이번 경선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웬만한 남성 못지 않은 뚝심과 강단으로 리더로서의 인식도 당 안팎에 확고히 심었다.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감당하기 힘들었던 인고의 18년을 보내면서 배워 온 강인함 역시 경선 과정의 고비고비마다 놀라운 의연함과 근성으로 발현됐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일단 박 전 대표는 이날 경선 패배로 올해 초부터 본격화된 대권 도전 행보를 접고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향후 정국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사진설명=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0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한 뒤 당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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