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김완하 시인ㆍ한남대 문창과 교수

월요일에는 만년동에 있는 한밭수목원에 갔었다. 마침 그 곳의 오피스텔에 들러서 누군가를 만나야 할 일이 있어 그곳으로 간 김에 오피스텔 뒤편으로 나있는 수목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날도 화창하고 바람도 포근해서 봄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나는 봄의 움직임들을 직접 느껴보고 잠시의 여유를 갖고자 했던 것이다. 그곳은 대단히 조용하고 사람들의 발길도 매우 뜸한 곳이기에 오전의 산뜻한 공기를 느끼며 사색도 할 수 있어 어쩌면 좋은 시 한편이라도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비가 온 뒤였기에 수목원에는 나무들이 한결 봄기운을 가득하게 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방금 꽃망울을 터뜨린 목련의 싱그러운 꽃잎과 산수유의 꽃무리가 내 발길을 먼저 끌었다. 그것들은 흰 색의 꽃잎과 노오란 색의 꽃잎으로 상대적으로 강하게 서로의 색상을 대비시켜놓았다. 갖가지 풀들도 서서히 잎을 틔우며 봄의 한 가운데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수목원에는 여기저기 작은 연못을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오르며 봄의 고요 속에 생동감을 일깨우고 있었다.

잔디밭 광장에 이르자 주변에 몰려 서있는 나무들은 발밑에 작은 물웅덩이를 품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알몸으로 서서 봄 햇살의 기운을 함빡 받고 있었다.

흰말채나무 한 그루는 제 은밀한 속살을 작은 물웅덩이에 비추어 보고 있었다. 갑자기 밀려온 바람에 물 위에 떠있던 구름의 등이 밀려 웅덩이에 작은 물살을 헤젓고 있었다.

그러자 언뜻 구름의 흰 속살이 스치는 듯하였다. 봄볕도 물 위로 젖가슴을 풀어 헤치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미 다 터져 만개한 산수유와 목련이 봄의 중심에서 화려한 화환을 둘러쓰고 많은 축복을 받고 있었다. 그 주변에 서있는 나무들도 하나 둘 봄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잠깐!" 하고 복숭아나무가 외치며 뛰어들어 제 꽃망울 힘껏 쥐어짰다. 갑자기 복숭아나무의 가지마다 꽃망울이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이때 산딸나무는 늘씬한 허리를 세우며 끼어 들었다.

장미과의 팥배나무도 지지 않으려고 어깨를 재빨리 들이 밀었다. 왕벗나무도 팽팽하게 차오른 꽃망울을 달고 잔뜩 늘어진 가지들을 여유 있게 휘청 거렸다. 계수나무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매실나무는 올 봄에 많은 매실을 열기 위해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나무들이 서서히 둘러서서 자리 잡기를 마치려고 하는 찰나였다. 건너편의 비탈을 따라서 앵두나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앵두나무의 가지마다 툭툭 불거진 꽃망울이 매달려 출렁거리고 있었다. 들러섰던 나무들 모두가 그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앵두나무는 그래도 여유롭게 그 머리 위로 작은 구름들이 맴을 돌고 있었다.

까르르르 나무들의 웃음이 수목원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산수유, 목련, 흰말채나무, 복숭아나무, 산딸나무, 팥배나무, 왕벗나무, 계수나무, 매실나무가 앵두나무를 가운데로 세우고 삥 둘러서자 수목원의 나무들은 모두 이쪽을 향해서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수소리가 한밭 벌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퍽, 퍽, 퍽" 햇살은 연방 플래시를 터뜨리며 합동사진을 찍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슬쩍 끼어 들었다.

아직 해는 오전의 신선함으로 빛나고 작은 물웅덩이마다 잔잔한 물살이 일어 그 위로 햇빛이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 김완하 시인ㆍ한남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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