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김희정 중부대학교 인테리어학과 교수

"'마눌님' 말은 무조건 받들어! 그게 내가 편하고, 가정이 편하고, 국가가 편한 지름길이다!"나의 오랜 디자인 고객인 모기업 디자인실 상무님이 어느 날 식사 중 직원들에게 한 말씀이었다.

출가 전엔 아버님 말씀을, 결혼해서는 남편 말을,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 말을 들으라는 어르신들 말씀은 이젠 옛말이 된 듯하다. 가정 내의 최대 구매력을 지닌 사람이 여성이며 현대 사회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 결정권을 쥐고 주도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여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여자'에게 주목하고 있다.

가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백화점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그럴 때면 우리 집 전화통은 늘 불이 난다. "이렇게 생긴 건데, 이런 상표인데, 이걸 살까, 저걸 살까?"시시콜콜 물어보지 않으시고 아버지 마음대로 사 오시는 날은 당장 어머니의 잔소리는 시작된다. 아마 그게 귀찮아서라도 아버지는 하나하나 전화로 설명을 하시나 보다.

이미 현대사회는 아내의 말을 어기고 무언가를 구매하려는 간 큰 남자들은 사라지고 있다. 반면 아내는 남편이나 또는 가족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대단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사를 가야하는 동네, 아파트의 가격 및 크기와 레이아웃, 자동차의 종류 및 색깔, 가족들이 들어야 하는 보험, 설날에 돌려야 하는 선물 리스트, 시댁식구들과 친정식구들의 생일부터 조카들의 졸업식, 오늘의 저녁식단, 하물며 두루마리 휴지의 브랜드까지 정말 우리나라 아내들의 놀라운 능력에 매번 감탄하는 날의 연속이다.



몇 년 전 필자는 치과병원 인테리어 디자인을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 병원장이었던 남자 고객은 첫 미팅에서 별 이야기 없이 알아서 디자인을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두 번째 미팅을 갖는 날, 이 병원장은 착하고 순박해 보이기만 했던 사모님과 동반하였고 그녀는 이미 공간 디자이너인 필자보다 더 많은 디자인에 대해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치과병원의 모든 것은 그녀의 뜻대로 진행되어 가기 시작했다. 안내데스크에 앉아있는 간호사의 수, 고객 대기 공간수와 소파의 재질 및 테이블의 사이즈, 천정 조명 방식과 출입구의 문을 안으로 여는지 밖으로 여는지, 진료실 벽의 색깔을 비롯하여 병원장이 신는 슬리퍼의 색깔까지 모든 것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짜증나고 귀찮았었지만, 차츰 그녀의 파워를 실감했으며 그녀를 감동시키기 위한 공간디자이너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하였고, 그 후엔 이미 그녀와 필자는 친구사이가 되어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수다 떨듯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디자이너와 고객과의 감성이 맞았으며 오감이 만족스러웠던 그녀는 처음 제시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이젠 여성 감동의 시대가 도래 했다. 여성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여성도 남성도 아이들도 그녀의 부모님도 감동 하지 못한다.



가전제품이나 그 외의 제품들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이미 모든 타깃을 여성에게 집중하고 있다. 여성이 사용해도 되는 제품이 아니라 여성이 사용하기에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기업들의 정신이다. 디자인을 부분 수정하여 여성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여성만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요즘 대부분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마인드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인간의 분류를 나누었던 性·色·年에 대한 기존의 고정 관념과 서열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특히 여성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여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여성의 멀티적인 감성을 알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여성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알고, 여자의 불편은 여자가 안다'는 말이 절실한 요즘 '여자'인 필자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김희정 중부대학교 인테리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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