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 김희정 중부대 교수

한 민족의 문화 근간은 의·식·주에서 출발하며 특히 먹거리는 그 민족을 나타낼 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농경문화로 정착된 우리 민족의 속성은 탕(湯) 문화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밥의 문화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밥'에는 언제나 '국'이라는 먹거리가 빠지지 않고 함께 나오기가 쉽상이다.

고대부터 우리민족은 정착된 농경생활을 바탕으로 천박한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풀'을 밥 삼아 가난하게 연명하여 왔다. 그러던 중 6. 25와 60∼70년대 보릿고개를 거치면서 '국물민족 혹은 탕민족'이라는 별명을 본격적으로 얻게 됐다.

이는 피난민들이 생사의 갈림길인 전쟁터에서 쫓기며 살기 위해 국에다 밥을 말아 급하게 먹고 또 정처없는 피난길을 떠나야 했던 그 절박 한 현실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보릿고개 시절 '농곡(弄穀)'으로 만든 막걸리를 국으로 대신하여 밥을 말아먹던 그 시절, 꼬부라진 허리로 힘들게 쪼그리고 앉아서 각종 나물을 채취하여 냉이국·쑥국·시래기국·토란국·호박국·근대국 등을 끓여 주시던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그 손길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그 한 많던 시절이 다 지나고 그저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갈비탕·설농탕·추어탕·떡국·만두국 등으로 대신하게 되었으니 정말 탕문화는 좋은 추억일 수 밖에 없고, 우리가 잊을 수도 없을 것 이다.

반면 서양은 유목 또는 사냥문화로 길들여졌기에 우리네처럼 국에다 밥을 후루룩 말아먹는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을 떠올려 보더라도 서양음식 중 국물로 돼 있는 'Soup'라는 것이 있고 중앙아시아에 '챠이(茶水)'라는 음식, 가까운 일본에는 '미소시루(みそしる)'라는 된장국이 있지만 이런 국물 음식에 빵 혹은 밥을 말아먹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 했다.

예를 들어 인체에 필수적인 단백질 섭취를 위해 멧돼지 사냥을 하여 여러 이웃과 나누면 한 집당 한 두근씩 배당을 것이며 이를 갖고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효용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단연코 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국에다 밥을 말아먹는 전통은 세계에서 우리 민족 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잘 먹는 것에 대한 경계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하루 세끼 먹는 그중 점심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보면 조선 23대 임금인 순조때 실천적인 실학자 이규경이 고증한 '점심(點心)'의 유래는 대충 이렇다.

"모든 굶주림은 마음에서 나는 것이요. 먹이로 점찍듯 그 마음을 찍으면 굶주림을 생각지 않게 된다. 곧 점심(點心)은 굶주림을 간단히 면하는 구기(救飢)에 뜻이 있다"고 하였다.

앞서 탕 문화에서 언급하였듯이, 한민족은 농경생활로 인하여 가난하기고 하고 더군다나 없는 살림에 자식들은 많이 낳아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가을과 겨울(10월∼2월)의 5개월 동안은 하루에 2끼씩 먹고, 해가 긴 봄과 여름(3월∼9월)의 7개월은 3끼씩 먹으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겨왔다. 그러던 중 개화기 이후 하루 3끼의 음식을 본격적으로 먹게 된 것이다.

또한 조식(粗食)으로 흥하고 미식(美食)으로 망했다는 로마제국에서도 아침·저녁으로 2식을 했고 중세 돈키호테도 두끼밥을 먹었다고 전해 진다.

식사(食事)를 다른 말로 '요기(療飢)'라고 하여 '애처롭게 굶주림이나 시장기를 면한다'고 옛 조상들이 표현했는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우리문화에서는 잘 먹는다는 것을 그다지 좋게 생각치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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