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웅 칼럼>정현웅ㆍ소설가

소설가

약 15년 전 무렵에 어느 출판사에서 나에게 나광중의 삼국지를 써달라고 하면서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 무렵 이문열의 삼국지가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이미 발표된 삼국지로는 박종화나 정비석의 삼국지가 있었다.

중국 삼국지는 나관중의 역작이기는 하지만, 중국 이야기이다. 중국의 영웅 소설을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읽히면서 마치 세뇌시키듯이 하는 것은 한국 작가로서 국민 정서를 바로잡는 일이 아니라고 나는 거절하면서, 무슨 지사나 되는 것같이 말했는데, 실제는 바빠서 쓰지 못할 상황이 더 솔직한 이유였다.

나는 한국의 영웅을 소설로 만들겠다. 광개토대왕을 10권이나 20권으로 만들어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소리를 쳤지만, 신문연재를 하며, 다른 출판사로부터 계약이 된 소설을 써줘야 하는 입장에서, 고구려사에 대한 소설을 손대지 못했다. 그 후에 삼국지는 이문열이 10권을 완간해서 1500만부나 팔았다고 하고, 황석영, 김홍신, 조성기, 김구용, 장정일 등 여러 명의 작가들이 줄줄이 써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당시 삼국지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집필했다면 출판사 대표의 말처럼 냉혹하고 리얼리티하게, 아주 독특한 소설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남의 것을 공개적으로 빼겨먹는 일이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중국의 고전을 리바이벌 하는 것은 아무리 돈버는 일이라고 하지만, 별로 좋게 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좀더 늘려 10권으로 만들면서 자기의 생각과 철학을 작품에 반영해서 더욱 재미있게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이 원작을 훼손하는 작업이다.

15년 전에 약속한 고구려시대 소설을 겨우 이제야 내놓게 되었다. 광개토대왕의 시대, 즉 고구려 중기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 자료가 빈약해서 역사 자체로 볼 때는 소설화하기 힘들다. 거의 픽션에 의존해야 한다.

이 소설은 단순하게 고구려 중엽의 정복 군주 광개토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우리나라 고대 역사의 정립에 있다.

고구려 당대에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고, 사랑은 어떻게 했으며, 주변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벌어졌는가 하는 것을 역사 기록과 상상을 혼합시켜 구성했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과거를 뒤섞어 보았다. 과거는 현재를 결정하며, 현재의 모습은 곧 과거의 현상이 만들어 낸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광개토대왕은 탁월한 정복자였다. 그는 18세에 등극해서 39세에 죽는다. 만약 그가 20년만 더 살았다면 동북아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는 분명히 삼국을 통일해서 김춘추 이전에 조선 민족을 통합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렇게 되면 만주가 당나라의 통치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의 한반도와 만주가 우리의 영토로 남았을 것이다. 이 거대 국토는 중국만큼 넓지 않았어도, 훗날 청나라가 명나라를 평정했듯이 우리 조선족이 중국을 평정할 수도 있었다. 물론, 발해가 세워져 별개의 국가로 성장했지만, 발해는 조선민족과 말갈, 거란 민족이 뒤섞인 다민족이었다.

그래서 발해는 훗날 금나라(말갈 민족)가 형성되고, 다시 여진족이 되었다가, 만주족이라는 민족 형태로 청나라가 세워진다. 조선민족은 다민족에게 흡수된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시금석이다. 그래서 현재를 바로 보려면 과거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역사 인식의 가치는 바로 과거 이야기를 안다는 차원이 아니라, 현재를 바로 보기 위한 가치기준으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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