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김희정 중부대학교 인테리어학과 교수

지루한 일상에서의 활기 중 하나는 "구경"일 것이다. 구경이 단지 눈요기 만을 위한 구경이 아닌 관심분야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보고, 물어보고, 대화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충족시키기에는 '박람회'장 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박람회는 상호이해의 장, 상호개발의 장으로서 그 기원은 일정한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시장(mart)'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미 6000년 이전부터 인류 최초의 농경의 역사는 시작되었으며 이렇게 생겨난 생산품, 수확물 등을 정해진 장소와 날짜에 모두가 모여 서로 교환하거나, 화폐를 통해 주고 받는 것이 바로 시장이었다. 또한 상품 뿐 아니라,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상대로 오락거리가 풍성하게 펼쳐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유통기구가 정비되기 이전의 시장은 상품교환의 장이며, 넓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정보 수집의 장이고, 오락을 즐기는 가설의 공간이었다. 한편 도로와 마차, 선박과 배를 의지하여 전달된 유통은 철도의 발달에 의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시장의 3개의 기능 중 상품교환의 기능이 먼저 분리돼 일상화 되었으며, 남은 정보교환의 기능이 박람회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오락의 기능도 차츰 일상화되고 상설화 되었다. 박람회를 보통 '엑스포'라 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엑스포지션(exposition)의 앞부분에서 따온 말로, 그 어원은 '상품의 매매, 교환, 또는 문화와 정보의 장'에서 비롯되었으며, 전시회나 설명회의 의미 등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엑스포를 박람회로 명명하고 있는데, 이 박람회란 어휘는 '많은 것을 모아 펼쳐 보이는 행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시물을 일정 공간에서 보여주는 전시의 개념은 소장품의 수집과 연계되는 박물관 제도의 고안과 함께 서구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박물관·미술관이라는 일정한 공공장소에서 부유층의 소유물인 컬렉션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고 연구하며 전시하는 개념은 규칙적인 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개최되는 오늘날의 박람회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분명 미술관과 박람회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박람회장을 가는 이유는 정보교환과 자유로운 대인관계의 형성 및 물품에 대한 교환과 매매를 위한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편한 복장으로 가장 자유롭고 시끌시끌한 분위기로 박람회장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박람회장이 근래 들어 너무 엄숙, 근엄하고 고급스러워져 꽤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서울에서 개최된 디자인 박람회에서 재미있는 광경이 연출됐었다.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주제에 맞게 부스(booth) 디자인을 한 공간이 있었다.

각각의 작은 방을 돌아 다니며 디자이너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탐색하며 그들의 작품을 느끼며 만지고 사용하고 가격을 물어보고 있는 와중에 바로 옆 부스(booth)에서 한 작가의 큰소리가 들렸다. "만지지 말란 말야! 그게 얼마짜리 인지 알아? 100만 달러짜리 골동품이야! 이래서 한국사람들은 안돼! 남의 물건에 대한 기본이 안되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순간 얼어 붙었고, 그 후 깊고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이 곳이 진정한 의미의 박람회장인지, 개인 소장품(所藏品) 전시장인지,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예술품(藝術品) 전시를 위한 갤러리인지, 골동품(骨董品)이 훼손될까봐 꽁꽁 숨겨두는 박물관 창고인지에 대한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즐겁고 가뿐해야만 하는 박람회장은 고요함에 빠져 버렸다.

/ 김희정 중부대학교 인테리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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