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국영화박물관이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다.

한국 영화자료를 수집ㆍ보존ㆍ복원하는 공식 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이 세워 운영하는 이 박물관은 서울에 들어서는 첫 영화 박물관이다.

영상자료원은 개관을 기념해 9~25일 그동안 발굴 복원한 귀한 고전 영화들과 숨은 여러 걸작을 선보이는 영화제도 마련했다.

한국영화박물관이 어떤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지 미리 둘러 본다.

◇잊고 있던 한국 영화사를 한 눈에
박물관의 전시공간은 기억 속에 묻혀 있던 한국 영화의 옛 모습을 되살린다.

상설 전시하는 '한국영화의 시간여행'에선 한국에서 영화가 태동한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영화사 100년의 흐름을 영화와 인물, 유물을 통해 살펴본다.

한국영화사를 크게 4개의 시기로 나눴다. 제1기(1903~1945년)는 무성영화에서 시작해 1945년 해방 이전까지의 영화를 살펴보며 제2기(1945~1972년)는 해방 후 전쟁의 참상을 그린 영화와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조명한다.

제3기(1972~1986년)에선 영화 검열의 시대와 국책 영화를 살펴보며 제4기(1987년~현재)는 '코리언 뉴 웨이브'로 불리는 1980년대 영화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근래의 웰메이드 화제작 등을 소개한다.

'여배우 열전' 전시에서는 일제 강점기 청순한 여성의 표상 문예봉에서 근대화의 역군을 연기한 최은희, 한국의 어머니 황정순, 시대극을 통해 에둘러 현실을 이야기한 시절이던 '씨받이'의 강수연, '칸의 여왕' 전도연까지 12명의 대표 여배우를 통해 사회문화사를 짚어본다.

또 기획전 '역사의 공간, 상상의 공간, 한국의 역사영화'에서는 신상옥 감독 '연산군'부터 이준익 감독 '왕의 남자'까지 연산군을 다룬 4편의 영화를 비교하며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속 조씨 부인 방을 보여준다.

◇역사를 되살리는 공간
박물관 한쪽에는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지은 협률사로 시작, 1908년 이름을 바꾼 초창기 무성영화 극장 원각사가 재현된다. 고증을 거쳐 만든 원각사에서는 당시 방식 그대로 변사의 해설로 재구성한 '아리랑' '벤허' '동도' 등 한국과 외국 무성영화를 함께 상영한다.

'영화의 원리 존'에서는 편집한 35mm 필름을 영사기에 장착, 스크린에 영사하는 과정을 소개하며 '애니메이션 존'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애니메이터의 방을 선보인다. 또 손상된 영화 필름의 복원과정과 '밀양'의 제작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학생과 어린이를 위한 교육 행사도 마련했다. 19세기 말부터 서구에서 유행했던 영화의 전신 광학 물체를 만들어 보는 '광학 장난감 만들기', 무성영화 장면을 보고 직접 대사를 넣어 보는 '변사 놀이'가 진행된다.

또 한국고전영화를 함께 보고 이를 토론해보는 '영화감상과 토론', 간단한 영상물을 만들고 미디어의 역할을 공부하는 '미디어 창작 놀이', 한국영화를 함께 보고 관련 영화인을 만나 토론할 수 있는 '1318, 한국영화를 가지고 놀다'도 마련된다.

◇보물 같은 영화 보여주는 축제
60여 편을 상영할 개관영화제는 올해 발굴한 무성영화 시대의 유일한 유산 '청춘의 십자로'(1934)부터 시작한다.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인 이 영화는 9일 저녁 7시 개막식에서 변사의 해설과 악단 연주가 함께하는 개막 공연으로 재구성해 무대에 오른다.

폐막작은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1967)이다. 41년 만에 발굴한 한국 최초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25일 오후 7시 폐막식에서 상영한다.

영화제에는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최근 복원한 여러 희귀 작품이 모두 모인다. 1936년작 '미몽',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 찰스 버넷의 '양도살자', 일본 미조구치 겐지의 '신 헤이케 이야기',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에바' 등이다.

1930~1940년대 경성과 상하이, 홍콩의 거리를 보여주는 5개국 발굴작도 상영된다. 먼저 영상자료원이 수집한 계몽ㆍ선전 영화 6편과 일본 무성 사무라이 영화 '무사도', 홍콩전영자료관의 전쟁 사극 '국혼', 정기탁의 '상해여 잘 있거라' 등이다.

'긴 영화들'을 상영하는 특별전 '장(長)-편영화'도 마련됐다. 5시간45분짜리 피터 왓킨스의 '코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5시간15분짜리 디렉터스 컷(감독 편집본) '1900년', 검열의 아픔을 겪은 이두용 감독의 154분짜리 '최후의 증인'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여러 감독이 기억하는 선배 감독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나의 사랑, 나의 영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미국 영화 예찬 '마틴 스코세이지와의 영화 여행'을 상영하며 엄마, 아빠의 청춘을 기억하기 위해 '쉘부르의 우산' '천녀유혼' '태양은 가득히'도 내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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