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포럼>김완하(시인 · 한남대 문예창작학과교수)

5월 2일부터 5박 6일의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우리 학과 3학년에 개설되어 있는 문학예술기행의 실습차원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4학년 졸업여행이 함께 한 것이다. 3명의 교수를 포함해 학부 대학원생 전체 75명이 부산에서 배를 탔다. 오사카항까지는 무려 17시간이 소요되기에 가고 오며 배에서 1박씩을 해야 하였다. 그러기에 일본에 머무는 기간은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으나 배로 떠나는 여행체험과 경비 절감을 위해서 선택된 것이었다. 나로서도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은 처음이었기에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또한 바다를 향해 울려 퍼지는 힘찬 고동 소리는 20대 나의 청춘의 설렘을 일깨우면서 낭만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더욱이 나에게 기대감이 컸던 것은 일본의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에 남아있는 정지용과 윤동주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의 문인들은 적국(敵國)인 일본에 가서 유학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처해 있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굴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으로, 적을 이기기 위해서 일본으로 향하는 이들의 심정에는 비분강개함이 가득 차 있었으리라. 일본의 동지사대학에 유학한 문인은 앞서 오상순 시인도 있었다. 비단 윤동주만이 죽음으로 돌아오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실제의 작품 속에도 일본 유학체험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은 동주이다. 동주는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준 땀내 나는 돈 봉투를 들고 늙은 일본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가는 심정의 고통스러움을 시에 담아놓고 있다.

동지사대학에는 1995년 2월 16일에 세워진 윤동주의 시비가 있었다. 그것은 윤동주 50주기를 기념해 세운 것으로 2월 16일은 바로 윤동주의 기일이다. 그곳에 세워진 시비는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는 시비와 똑 같은 모습으로 두 개의 시비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전한다. 연세대학은 동주가 다닐 당시는 연희전문으로 동주의 정신은 한국과 일본을 가로 지르면서 시비에 새겨진 「서시」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옆에 10여 미터 간격을 두고 정지용의 시비가 새겨져 있었다. 지용의 시비는 2005년에 세워진 것으로 거기에는 그의 시 「압천(鴨川)」이 새겨져 있었다.

저녁때에는 시내에 나가서 카페 프랑스에 가보았다. 그곳은 정지용이 조국을 그리워하며 즐겨 찾던 곳이고, 바로 지용의 시 「카·페·프란스」에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윤동주도 들러서 시작메모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원통형의 천장이 중앙에 솟아 있고, 유럽풍의 음악이 흐르고 있어 일본 속의 유럽처럼 느껴졌다. 커피를 한잔 시켜 마시며 정지용이 느꼈을 향수와 윤동주가 느꼈을 죄의식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면 정지용의 향수는 곧 나라를 잃어버린 한이었던 것이며, 윤동주의 죄의식도 곧 나라를 잃어버린 국민으로서의 죄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문학은 곧 역사가 되는 계기를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와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골목을 걸어 나왔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무엇을 잃어버린 듯이 급히 카페 안으로 달려 들어가 보았다. 그때였다. 저쪽 두 개의 구석에 앉아 한쪽은 정지용이 또 한쪽에는 윤동주가 쓸쓸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는 이제 막 한편의 시에 마침표가 찍히고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길거리를 가다가 자주 마주치는 한국인. 그러면서 나는 우리들의 발길이 너무 쉽게, 쉽게 일본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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