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미국에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수출 중단을 요청했다. 비록 이미 합의된 한미 쇠고기 협정문의 기본 골격을 바꾸는 엄밀한 의미의 재협상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양국이 며칠째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장관의 말이니 추가 협상이든 재협상이든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정 장관이 "미국의 답신이 올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의 고시를 유보하겠으며 따라서 당연히 검역도 중단된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벌써 양국 사이에 어느 정도 접점이 이뤄진 것으로도 읽힌다.

추가 협상이든 재협상이든 이미 타결된 합의가 발효되기 전이어야 한다. 수입위생 조건이 관보에 실린 뒤에는 기존 조건의 수정을 위한 새 협상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인쇄까지 끝난 관보의 제본을 중단시키고 고시를 전격 유보한 것도 그래서다.

하나 뭐라고 규정하든 국가 간 협상을 뒤집는 게 일각의 주장처럼 그리 간단한 일은아니다. 개인 간 거래에서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물리려면 위약금 등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온 건 순전히 정부 탓이다. 검역 주권이고 뭐고 아무 생각 없이 몽땅 내준 '날림' 협상이 국민적 분노의 진앙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쇠고기 수출업계도 자율 규제를 통해 월령을 표시하겠다고 다짐하는 등 다소 신축적 태도로 나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아마도 다짜고짜 보복 운운하기보다는 조금 양보하는 한이 있어도 한국 시장을 일단 열어 놓고 보는 게 유리하다는 전술적 판단에서일 게다. 말하자면 상생의 길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 국민도 이젠 '청와대로 가자'는 등의 정치 구호를 접고 협상단에 성원을 보내는 게 바람직하며 국회도 재협상 결의 등을 통해 정부에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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