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폭풍처럼 일어난 촛불집회와 더불어 휴대폰에 수시로 집회 나오라는 글이 올라온다.

누군가 불특정 다수에게 휴대폰의 문자를 날리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한·두 사람이 아니고 각기 다른 전화번호에서 온다.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내가 소속되어 있는 문학 단체에서도 여러 차례 문자가 왔는데 동아일보사 앞으로 모이라는 장소까지 적혀 있다. 그런 문자를 며칠에 걸쳐 다섯 번 정도 받은 것 같다. 휴대폰으로 들어오던 것이 요즘에는 이메일로 들어오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네티즌이라든지, 그 뜻을 가지고 있는 열정적인 시민들의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천여명이 있는 문학 집단이란 조직에서 모두의 의견이 통일된 것도 아닐 텐데 그 집단의 이름으로 집회를 종용하는 문자를 보내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

촛불집회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집단이 가지는 성격과 그 집단성의 문제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다양한 의식과 개성을 가지고 있고 현 사회나 역사에 대해서 자기식의 철학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들의 집단이 어느 특정한 시민운동에 참여를 종용하는 것은 그 집단이 진보냐 보수냐는 것을 떠나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촛불집회는 육칠년 전에 미군 탱크에 치인 두 소녀들의 죽음과 함께 일어난 불꽃같은 비폭력 시민운동의 하나다. 그래서 촛불집회는 축제이면서 하나의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시민들이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 보도블럭을 깨서 집어 던지던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 지금의 촛불집회는 그만큼 한국의 시민들이 성숙해졌다는 의미이다.

시민의 여론이 거대 언론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고, 여론의 힘이 이제 절대권력 언론조차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는 끔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참으로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여기서 정리하면, 촛불집회는 순수하고 자발적인 비폭력 시민운동의 하나로서 바람직하며, 위정자들은 그 점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그 운동의 언저리에서 선동을 하거나 어떤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하면 그것은 그 순수성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문열이 남이 써놓은 소설(초한지)을 자기가 고쳐 썼는데,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바로 이 시기에 기자회견을 하면서 촛불집회를 '디지털 포플리즘의 승리'라고 말한 것도 실제는 그 순수성을 모욕한 말이다. 한편 끔찍하다는 우려까지 했는데 그 염려 역시 국민의 수준을 경시하는 발언이다.

국민은 대의명분 없이 어느 집단적인 가치관으로 촛불집회를 하는 눈치가 보이면 냉정하고 싸늘한 시선으로 촛불을 바라볼 것이고, 그런 촛불집회는 여러날 가지도 못하고 꺼진다.

이제는 촛불도 거둬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처음에는 쇠고기 재협상 문제로 시작된 것이 지금은 정권 퇴진까지 들고 나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변질이며 이렇게 되면 포플리즘 운운하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집권을 시작한지 백일밖에 안되었는데, 아무리 큰 실수를 했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고 끌어내린다면 그를 지지해준 대한민국 국민들의 입장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그리고 이번 촛불집회가 지금까지 보여준 그 정도로 충분한 가치를 발휘했다. 여기에 자꾸 야당 대표라든지 야당 의원들의 얼굴이 촛불집회 군중 속에 나타나고 진보성 문학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회원들을 자꾸 불러내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촛불집회의 순수성이 퇴색해질 우려가 있다. 순수성이 퇴색해지면 그 힘은 바람 앞에 촛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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