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시각으로 '세상 다시 읽기'

젊은작가 ④ 이종현

미술작품에서도 '언어의 유희'가 가능할까? 자신의 작품 속에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못하는 기상천외한 말들을 서슴없이 쏟아내는 작가가 있다. 청주시 내덕동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내 '하이브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설치작가 이종현(41). 가슬가슬한 까까머리와 짙은 브라운의 뿔테안경, 무심코 감아쥔 담배개피와 손가락…. 얼핏 보기에도 고집이 대단하기만 하다.


이종현의 작업은 '성(性)'과 '소외'로 요약된다. 남성 속에 숨겨진 여성, 여성 속에 숨겨진 남성 등 '성 속의 성'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보일 듯 말듯 아주 작고 소외된 것들의 의미를 들춰낸다.


그런 이종현의 오브제는 주전자, 냄비, 도시락, 그릇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필품들이다. 여기에 건축물의 기초가 되는 작은 '못'이 있다.

그에게 주전자 주둥이는 늘 방출욕구를 갖고 있는 남성이다. 이와 함께 주전자와 때로는 한 몸으로, 때로는 대립적 위치에 놓여진 양은냄비는 여성으로 이들이 만날 때 양성의 조화와 상생의 의미가 되살아난다.

지난 5월 '제2회 대전중앙시장 미술제-시장보고, 미술보고'에 출품한 '젠더(gender)-1'은 일반 관람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닐텐트 안에 놓여진 네 개 주둥이의 양은주전자. 그 밑에는 죄목 '성(性)'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관람객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며 한 번씩 눈길을 줬던 이 작품은 사방을 향해 성욕을 분출하려는 주둥이 네 개 달린 주전자와 그것의 방만함을 고발하고 가두어 억제시키려는 사회성을 표현하고 있다.


남성의 상징물인 주전자 주둥이를 일반 냄비 밑부분에 부착시킨 작품 '젠더'는 양성평등을 넘어서 남성이 여성을 떠받치고 있는 요즘 세태를 얘기한다.

얼핏 보기에는 화로모양 같기도 하고 세발 달린 주물그릇 같기도 한 이 작품은 과거 남성주의와 권의의식에 반기를 들고 있다.

주둥이를 제거한 밋밋한 주전자와 아직 위치를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또 다른 작품 '젠더'. '무성'과 '통성'을 의미하는 이 작품은 이들이 제 위치에 확고히 안착될 때 비로소 '중성'이 되고 억눌렸던 성욕 해소와 잘못된 성인식의 반성이 이루어진다.

이종현의 톡톡 튀는 작품들은 이밖에도 많다. '못'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건축물을 지탱하는 절대소품이지만 일반인들은 그것에 관심이 없는 세태를 고발하기 위함이다.

그는 이처럼 못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그중 줄줄히 늘어선 못을 철사로 연결한 '군중심리-못 간다'는 작가의 언어유희와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총 20명(?)을 형상화한 못들이 등장하는데 맨 마지막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철사로 연결돼 있다. 앞에서 힘차게 끌고 가는 대못이 있고 그보다 작은 크기의 나머지 못들. 이들은 하나같이 맨앞 대못과 연결돼 그가 이끄는 방향으로 끌려간다.

본인은 가고 싶지 않지만 군중심리에 편승하는 현대인들의 단면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주저앉은 채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단 한명은 획일적 행동에 대한 반기요 주체성 회복의 희망이다.

도시락을 재료로 한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도시락이 있어야만 맛있는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것을 담고 있는 도시락에 관심조차 없다. 작가는 인간이 밥을 먹을 때 도시락을 보느냐 밥을 보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보이지 않는 물체의 의미를 통해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한지에 도안을 붙인 다음 하나하나 구멍을 뚫어 바늘땀으로 만든 작품은 아주 독특하다. 김구선생 초상화와 세계전도 사과 꽃 등의 작품은 종이와 실 모두 흰색을 사용하고 있는데 보일 듯 말듯 한 도드라짐이 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른 입체감을 보여준다.

그런 이종현이 요즘 '모든 것 다시 읽기'에 천착하고 있다.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고 그것의 의미를 재확인하거나 반대개념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파이프이되 파이프가 아니다"고 주장한 초현실주의 대표작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처럼 현실에 뿌리를 두면서도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그것들의 차이, 다름을 인정하려 애쓴다.

작품 '마그리트 다시보기'는 주둥이를 도려낸 주자자 몸통 속에 남성의 상징이자 방출욕구인 주둥이를 밀어 넣고 그 위에 냄비를 덮었다. 주전자 본래 기능은 상실했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시원하게 방출할 수도 그렇지 못하고 애를 먹을 수 있음을 전달한다.

이종현은'모든 것 다시 읽기'의 하나로 새로운 오브제에 눈길을 돌린다. '텐트'를 이용하게 될 작품주제는 '유목'. 텐트를 펼친 다음김장용 비닐을 덧씌워 재단하는 형태로 진행할 예정인데 거처할 곳이 없어도 차와 핸드폰만 있으면 불편하지 않다는 현대인의 생각을 통해 21세기 '신유목' 의미를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오직 나와 다르면 모두 틀렸다는 오만이 판치는 세상, 다름을 온몸으로 보려주는 작가 이종현의 자신과의 다짐을 통해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

"몇 번이고 시도했던 '자신과의 이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화해를 청하곤 합니다. 저와 제 자신의 공존은 분명 아름다운 생각이지만 또한 언제든지 나를 감시하며 이별을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저 또한 아직 자신에게 말하지 못했지만요." /글=이성아기자·사진=노수봉기자

스피드 인터뷰

“사회는 면도칼과 같아서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자르는 냉철한 의사와도 같다”는 이종현. 그는 야만인으로 살기에는 하루 종일 뒹굴 거친 자연이 없고, 사회인으로 살기에는 선택할 울타리가 너무 좁아 갑갑할 뿐이라고 고백한다. 뭔가 남다른 작품세계가 궁금했는데 그의 색다름은 바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 보기에는 재미있지만 판매는 되지 않을 작품 같다.
"'저게 무슨 작품이야' '우리 집에도 있는데' 등의 반응을 얻는 게 목적이다. 미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아주 친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왜 미술을 하게 됐나.
"나하고의 약속 때문이다. 1990년 대학시절 40여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230만원을 모두 쏟아부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바티칸 '성모마리아 모자상'이나 비너스 등은 커다란 충격 때문이다. 이후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고민스러워 자전거 일주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평생동안 하기로 약속을 했다."

- 한순간 지역을 떠났던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2004년 나 자신에 대한 한계에 부딪혔었다. 열정이 강해서였는지 불현듯 지역을 뜨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6년 실제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었다. 다시는 안돌아오려고 했는데 결국 6개월만에 돌아왔다."

- 무엇이 그토록 강한 분노와 좌절을 줬나.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데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가 내 안에 너무도 많았었다. 작업을 하는 데는 이런 이유들이 핑계가 될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성아기자

작가약력

△1967년 충북 단양 출생 △홍익대 미대·동 대학원 섬유미술과 졸업 △1993~1999년까지개인전 4회 △홍익대 미술대 △한국-페루 교류전(청주)·global warming project(태국)·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기획 '지역작가전'(청주, 갤러리 신)·대전시 6개 갤러리 기획 '6개의 전시' (대전, 이공갤러리) 등 그룹전 다수 △청주시 여성발전문화센터 로비 공공미술 기획·청주 고 인쇄 박물관 금당계단벽화·청주 용암 1동사무소 내부벽화 설칟공공미술팀 0431 기획 '가구공장 프로젝트'(2002) 등 다수.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