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장 여백에 꼭 와야 된다고 꼼꼼하게 써서 보낸 칠순잔치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일행도 없이 혼자 나서기엔 좀 서름하지만 서울 P호텔 31층이 처음이 아니라서 머뭇거림 없이 들어갔다가 눈이 휘둥그레 졌다. 엄청난 축하객에 놀라고 축하객들이 풍기는 귀품에 놀랐다. 게다가 내빈소개의 첫 번째로 하나뿐인 아들 생명의 은인을 소개한다며 나를 일으키는 바람에 어쩔 줄 몰랐다. 수년 전, 그 때는 내 직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하도 민망해서 눈을 내리깔다가 내 시선을 다 흡수해버린 것은 주인공 가슴에 달린 커다란 호박단추. 나는 늘 호박을 소나무의 눈물이라 한다.

간난신고의 세월을 살고 또 살아 백년, 천년이 되면 소나무의 가슴에 아침 해처럼 맑고 영롱한 보석이 박힌다. 호박이다. 어린 소나무의 이슬같이 맑은 송진이 비바람을 견디는 10년 세월이 가고 또 십년가면 조청보다 더 끈끈한 점액이 된다. 그 점액을 가슴에 안고 헤아릴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을 백년 살고 또 백년을 살아 엉기고 엉기어 천년을 견디면 굳어서 박히는 것이 호박이다. 일각이 여삼추였을 고통의 세월동안 차마 삭이지 못한 눈물을 울근불근 땅위로 드러난 뿌리에 많이도 떨궜으리라. 가슴의 응어리가 단단한 구슬이 되는 동안의 세찬 비바람에도 당당하게 귀품을 잃지 않는 것이 소나무다.

돌아오는 길 내내 호박 생각만 했다. 내 가슴에 박힐 호박도 저렇게 영롱하면 얼마나 좋을까. 인고의 세월을 삼키고 또 삼키더라도 소나무처럼 당당하게 품위를 지키며 영롱한 보석하나 내 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밤이다.

/오계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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