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낳은 딸

검지손가락 끝을 조금 내 보이며 요 만큼을 주고도 이 만큼의 행복을 받았노라며 두 손을 들어 큰 원을 그려가며 싱글벙글 웃던 가게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며칠 전, 혈압체크기를 사기 위해 의료기기상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인아저씨는 혈압체크기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며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연신 웃으셨다. 웃는 얼굴을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가슴으로 낳은 딸

"아저씨, 뭐가 그렇게도 좋으세요?"

"저는 늘 행복하지요. 우리 딸이 올해 몇 살인지 아세요? 열한 살이에요. 열한 살."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는 어린아이같이 손가락 열 개를 쫙 펴 보이며 활짝 웃으셨다.

"열한 살이요?"

머리가 허연 아저씨와 열한 살 딸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아 속으로 계산을 해 보며 놀라는 나에게,

"우리 딸이 얼마나 예쁜지 한 번 보실래요?"

주인아저씨는 핸드폰을 열며 딸의 사진을 내밀었다. 핸드폰 속의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희미한 눈으로 핸드폰의 아이를 들여다보려는데,

"아, 그거 말고 이 사진을 보세요. 이 사진이 더 잘 보여요."?

아저씨가 가져다주는 큰 사진을 보니 아저씨 품에 안긴 딸아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은 정말 행복해 보이는 아빠와 딸의 다정스런 모습이었다.

"제가 가슴으로 낳은 딸입니다. 두 돌 막 지났을 때 데려 왔거든요."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는 말에 나는 적지 않게 놀라 물었다.

"어머, 그래요?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예쁘세요?"

"그럼요. 예쁘고말고요. 우리 식구는 딸 때문에 정말로 행복해요.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이에요."

"정말로 축복받은 아이네요."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축복을 받았지요."

"부인께서도 선뜻 동의 하셨어요?"

"그럼요. 밥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했더니 얼른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구요. 헤헤헤……."?

스물 예닐곱 살 되는 오빠들도 자기 동생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모른다며 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며 공부도 꽤 잘한다고 예쁜 딸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이 엄마도 얼마나 젊게 사는지 아세요?"

젊은 엄마들과 아이 키우는 것에 관심을 두니 저절로 젊어진다는 것이었다. 가슴으로 낳은 딸을 키우며 자기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딸아이에게 손톱만큼을 주었는데 딸아이는 몇 십 배의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으니 오히려 자기가 축복받은 삶이라고 감사해 했다.

몇 년 전, 가슴으로 낳은 딸을 키우는 어느 기사님이 아이 우유 값이라도 벌어야겠다며 숙직을 하는 곳으로 전출을 가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왔다.

-참으로 훈훈한 세상

어저께 한파가 밀려 와 손을 호호 불던 날, 학교 지킴이 선생님이 추위에 교통을 서 주시는 노인 분들께 드린다며 양말을 한 박스씩 사 와 전해 주셔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더니 오늘은 또 가슴으로 낳은 딸아이 이야기로 감동을 주니 세상은 참으로 훈훈한 세상임에 틀림없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며칠 전 사제결연을 맺은 은실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저녁 은실이는 무얼 하고 있을까? 내일은 전화를 걸어 올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만나 보아야겠다.

요즈음 『우동 한 그릇』의 동화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훈훈한 이웃 사랑 이야기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에 요만큼을 주고도 이 만큼을 받았다는 그 아저씨의 환한 얼굴이 꽁꽁 언 추위를 녹여주고 있었다.

/진영옥 새터초 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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