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상관없이 날이 새기 전에 잠이 깨는 경우가 잦아졌다. 뒤척이다보면 길 건너 까만 창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곧 날이 샌다고 기별하는 봉화 같다. 서너 창에 불이 오면 이어서 15층부터 차례로 내려가며 계단 통로 창에 주황색 불이 켜진다. 그 불은 같은 순으로 꺼진다. 아마 신문 배달인가 싶다. 차근차근 새는 날을 지켜보려다가 늘 놓쳐버리고 깜빡 딴생각에서 돌아오면 이미 날은 밝아 있곤 했다.

오늘은 한가하게 시골집에서 새는 날을 맞이한다.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릴 수가 없어 일어나 바깥세상을 살핀다. 따로 불 켜지는 창은 없지만 제일 먼저 산 밑에 사는 소 장사가 소를 싣고 깜깜한 고샅을 헤집으며 먼 장에 간다. 이어서 우우웅 우우웅 뒷골 절에서 범종이 깨어나라, 깨어나라 중생을 깨운다. 그런저런 것 아랑곳없이 뒤꼍에는 도둑고양이가 악을 쓰며 거부하는 암놈을 기어코 날이 새기 전에 사랑을 치른다. 도둑고양이들의 소란에 어둠이 슬슬 물러서지만 경운기가 겨울잠을 자니 까치조차 늦잠이다. 어제 품었던 어둠을 재바르게 다 쏟아내고 태양을 기다리는 삼라만상이 능청스럽기도 하다. 우주의 섭리인가.

어른들의 한숨 섞인 말씀이 생각난다. 목숨부지하려면 배알이 꼬여도 국군이 온 낮에는 국군 만세요, 인민군이 내려오는 밤에는 인민 만세 하셨다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섭리라 하셨다.

삼라만상이 다 어둠을 흡수해도 빈 논을 채운 백설만은 온 밤을 이름값 하더니 눈부시게 태양을 반기며 하루가 시작 된다. 나도 일과표를 살핀다.

/오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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